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엄복동 (문단 편집) == 자전거 == ||<-5>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장.svg|width=26]]]]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ffffff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 || 465호 ||<|2> ← || '''466호''' ||<|2> → || 467호 || || 의병장 김도현 칼 || '''엄복동 자전거''' || 381호 전차 || || [[파일:attachment/엄복동-자전거.jpg|width=100%]] || ||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401호 ~ 제500호|등록문화재 466호]]로 지정 || 지금 남아있는 자전거는 1920년 자전거 경기 때 [[영국]]의 러지(Rudge-Whitworth)사[* 1894년부터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만들던 회사지만, 모터사이클 회사라고 보는 것이 맞다. [[http://en.wikipedia.org/wiki/Rudge-Whitworth|영문 위키피디아]]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혁신적인 변속기설계와 경주용 모터사이클의 디자인은 클래식 모터사이클 덕후들을 하악대게 만들기 충분하고도 넘친다.]에서 1910~1914년 사이에 제작한 것으로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자전거 중 가장 오래된 자전거이며 전 세계적으로 봐도 희귀한 자전거이다. 당시 차대번호는 1065274였다. 1920년 경기 당시 영국 러지사에서 자전거 홍보를 겸하여 엄복동에게 증여하였으며, 이후 엄복동의 우승신화와 함께하게 되었다. 맨 위 1923년 경평대회 우승기와 같이 있는 자전거와는 핸들바가 다르며, 그 외의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뒷 코그는 트랙 경기용과 동일한 1개 짜리 [[픽스드 기어 바이크|고정기어 방식이다.]] 프레임은 강철재이며 [[토클립]], 경량화되어있는 체인링 등 당시 트랙용 자전거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림은 목재로 몇 겹의 나무 층으로 라미네이팅 공법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당시 경량화를 위해 1940년대까지 트랙 경기용으로 흔히 사용하던 방식이다.[* 도로경기(Criterium)에서는 강도의 문제로 사용하기 힘들었다.] [[타이어]]는 당연히도 클린처 개발 초기(미쉐린에서 개발)였던 관계로 트랙용으로는 사용을 안 하고 있어서 튜블러. 이 자전거는 엄복동의 1929년 은퇴 후 후배에게 전했다고 하며, 이를 다시 박성열이 받아 소유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 박성열[* [[서울]]에 거주하다가 2010년부터 [[일산신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도싸에 박성열의 제자가 활동하고 있다.]은 '''이 자전거를 들쳐업고 피난을 가는 지극정성으로 보존하여서''' 현재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문화재 등록 당시 소유주는 김근우로 상세한 사항은 주요 연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