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어저우시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중국 어저우 1.jpg]] 손권이 도성으로 세운 무창성. 토성이라 일부만 남아있고, 해자였던 호수는 공원으로 활용된다. 춘추시대인 기원전 879년, [[초나라]]의 7대 국군 [[웅거]]가 양월을 격파하고 일대를 점령한 후 악왕성 (鄂王城)을 세워 장남 [[웅지홍]]을 봉하였다. 웅거가 사망한 후 계승한 악왕 웅지홍은 여전히 악왕성에 머물렀고, 따라서 현 어저우는14대 국군 [[웅악]] (熊咢)의 치세까지 초나라의 초기 수도로 기능하였다. [[진나라]]가 점령한 후 남군 악현 (鄂縣)이 설치되었고, [[한나라]] 대에 악현은 형주 강하군에 속하였다. [[삼국시대]]인 221년 [[손권]]은 2년 전에 얻은 형주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강동]]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무력으로써 번창함'이란 의미인 무창현 (武昌縣)을 설치하였다. 그후 손권은 229년 [[건업]] 천도 전까지 무창을 수도로 삼았다. 252년 그가 사망한 후 권신 [[제갈각]]이 도성을 정비해 재차 천도하려 했으나 [[사마소]]의 남하로 좌절되었다. 265년 [[손호]]가 재차 천도하고 [[제갈정]]이 도성을 증축했지만 이듬해 재차 건업으로 돌아갔다. 그 외의 시기에도 무창은 서도 (西都)로써 중시되었다. 280년 봄 [[서진]]의 장군 [[왕준]]에게 정복된 후 다시 악현으로 돌아갔고, 무창군에 편성되어 그 치소가 되었다. 그러다 589년 악현은 북쪽의 서릉현 (옛 강하군의 중심, 현 우한시 신저우구)을 병합하여 재차 무창현으로 편성되었고, 613년에는 서쪽의 성당현도 병합하였다. 당대에 현 지명의 유래인 악주 (鄂州)가 설치되었는데, 그 치소는 현재의 [[우한]]이었다. 어저우에는 [[남송]] 대인 1221년 무창군 (武昌軍)이 세워졌고, 무창현은 수창현 (壽昌縣)으로 개칭되었다. 따라서 1258년 [[몽골-남송 전쟁]] 중 벌어진 [[악주 전투]]는 현재의 우한 일대[* 정확히는 우한 시 우창 구]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어진 [[원나라]] 대인 1277년에는 산부 (散府)가 설치되었다가 1301년 부가 폐지되고 무창로 (武昌路)에 속하며 다시 무창현으로 돌아갔다. [[신해혁명]] 후 우창 (무창)현은 어청현 (鄂城縣)으로 개칭되었다. 1938년 10월 23일 도시는 일본군에게 점령되었고, 1949년 5월 14일에는 [[인민해방군]]이 진주하였다. 그후 인근 황강에 속하여 1979년 현급시가 설치되었고, 1983년에는 역으로 황강까지 포함한 어저우 지급시로 승격되었다. 다만 1995년 황강 역시 지급시가 되어 분리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