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어영담 (문단 편집) == 생애 == 어영담은 1532년 내금위(內禁衛) 소속의 적순부위(迪順副尉:정7품 무관의 품계) 행 충무위 부사맹(行忠武衛副司猛:종8품) 어심(魚深)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이 어디인지는 불명이나 [[경상도]] [[함안군]]에 거주했다고 한다. 그는 무예에 능하고 담력과 지략이 뛰어나 일찍이 여도진 수군만호(呂島鎭水軍萬戶:종4품)에 특채되었고, 1564년([[명종(조선)|명종]] 19) 식년시 [[무과]]에 병과 3위(전체 제11인)로 급제했다.[[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MU_6JOa_1564_000186|#]] 진해 등 여러 진관(鎭管)의 막료(幕僚)로 있으면서 해로(海路)를 익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양(光陽)현감으로서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서 수로 향도(水路嚮導)로 활약,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당항포 해전]]·율포 해전 등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하는 데 공을 세웠다. 1594년 4월 9일 [[전염병]]에 걸려 한산 통제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장남 어응해(魚應海)와 차남 어응린(魚應麟) 등 두 아들을 두었다. 그러나 어응해는 슬하에 아들이 없었고, 어응린은 함종어씨세보에 자식에 대한 사항이 전혀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첫째 작은아버지 어침(魚沉)의 두 아들 어영수(魚泳洙)와 어영기(魚泳沂) 또한 아들이 없었고, 둘째 작은아버지 어혼(魚渾) 또한 슬하에 아들이 없었으므로 호군공파는 어영담의 아들 대에서 절손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