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제(수) (문단 편집) ==== 대업(大業) ==== 게다가 수도인 장안을 놔두고 굳이 [[낙양]]에 '''제2의 수도'''를 건설하는가 하면 경성 낙양 서쪽에 황가의 대공원인 '서원'을 조성하기까지 했는데, 주위가 무려 200여 리에 이르렀다. 이때 수양제는 날마다 300만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공사를 했는데, 이들 중 과반이 죽거나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공원 안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진귀한 화초와 나무, 희귀동물들을 모아놨는데 날마다 수만금을 뿌렸고, 주위 넓이가 10리가 넘는 인공호수를 파서는 호수 한 가운데에 높이 10장이 넘는 해상신산을 3개나 쌓았다. 각각의 산 위에는 정자와 누각 따위를 세웠으며, 자신의 제2의 수도가 영원히 봄날 풍경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면 [[궁녀]]들을 시켜서 '''비단으로 울긋블긋한 꽃잎을 오려 나무에 가득 뿌리도록 했는데, 색이 선명하지 않으면 다시 갖다 뿌리게 했다.''' 거기에 겨울이 와서 호수가 얼어버리면 호수의 얼음을 모두 깨내고 역시 형형색색의 비단을 오려서 만든 연꽃을 뿌리게 했다. 그리고 달밤이면 화장을 짙게 한 수천 명의 궁녀들을 데리고 말을 탄 채 천천히 거닐다가 말 위에서 청야유곡을 연주하도록 했다. 재위 3년차인 606년, 양광은 특별한 놀이를 즐기기 위해서 과거 북제, 북주, 남진 왕조의 궁중에서 가무를 하고 연기하며 서커스 공연을 했던 전문 악대와 광대들 집안의 자제들을 징집하여 '악호'[* 오락업에 종사하는 특수한 집안]로 편성하는 한편, 6품 이하 관원과 백성 중 이 방면에 특기를 가진 사람들을 경성으로 불러들여 전무후무한 대규모 공연을 거행했다. 이 공연은 양제 또한 관람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참가한 사람들에게 특별히 상을 내렸는데, 그 수가 30,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거기에 공연에 필요한 복장을 만드느라 동•서 양경의 옷감이 모조리 바닥나기도 했다. 양제의 이러한 행동은 영락없는 [[진(영성)|진나라]] [[이세황제]] 영호해의 재림이었다. 과연 연호부터 '''대업'''(大業)이라고 할 만했다. 또 양제가 방벽의 외부조사를 명목으로 요동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수령들은 양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1주일만에 100만명을 동원해 별궁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쓸데없이 고퀄리티|좋은 머리를 이상한 데 발휘해서]], 임의거(任意車)와 어녀거(御女車) 등의 수레를 만들도록 했다. 이름에서 짐작이 가능하겠지만 이 수레에 여자를 태우면 [[BDSM|수레 내부의 장치가 자동적으로 여성의 사지를 결박]]해 양제의 색욕을 충족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임의차를 만든 장인은 큰 상을 받았으며, 양제의 아이디어를 적극 채용하여 수레가 험한 길을 가도 [[서스펜션|내부로 진동이 전달되지 않아]] 수레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개조된 어녀거를 새로 제작했다. 순행 때 배에서 내리면 적극적으로 애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임의거와 어녀거는 명나라때 만들어진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임의거는 명대에 살았던 첨첨외사(詹詹外史)라는 사람이 편집한 《정사》(情史) <정호류>(情豪類)에 나오고, 어녀거는 명대 소설 《수양제염사》(隋煬帝艷史: 수양제의 섹사)에 나오는 섹수레이다. 이 책들에 의하면 임의거는 하조(何稠)라는 사람이, 어녀거는 하안(何安)이란 사람이 모두 수양제를 위해 제작한 것이었다. 이 수레들의 특징은 안에서는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보이며, 안의 소리가 밖으로 새지 않는 고급 밀실 수레였다. 즉 비밀이 보장된 수레였다. 임의거라 한 이유는 수양제가 하조에게 이 수레의 이름을 묻자 임의로 만들어서 없다고 해서 지어진 것이었고, 어녀거를 풀이하면 '어녀'의 '어'는 '수레나 말을 몰다'라는 의미였고, 여기에 여자를 붙여 '''여성을 몰다.'''라는 뜻이었다. 《수양제염사》(隋煬帝艷史)의 묘사를 가져오면 다음과 같다. >성명이 하안(何安)이란 사람이 어녀거를 만들어서 양제에게 바쳤다. 그 수레는 공간이 넓고 침대와 이불이 모두 갖춰져 있으며, 사방을 비단(鮫綃)으로 둘렀는데, 이것이 가늘고 섬세한 장막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밖에서 안을 보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안에서는 십분 투명해서 밖의 산수초목을 모두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또, 수많은 금붙이와 옥붙이가 이러저리 휘장 가운데 걸려있어서, 수레가 이동할시 흔들려서 쨍쨍 소리가 났는데, 마치 섬세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수레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밖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길을 가는 동안 궁녀를 희롱할 때[* 주로 성관계를 뜻한다.], 마음대로 해도 무방해서 이름을 어녀거라고 지었다. 양제가 보고 십분 만족해하며 “이 수레 잘 만들었네, 길에서 적막하지는 않겠군!”이라 하고, 하안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忽有一人,姓何名安,自制得一駕御女車,來獻與煬帝。那車兒中間寬闊,床帳衾枕,一一皆備,四圍卻用鮫綃,細細織成幃幔。外面窺里面卻絲毫不見,里面卻十分透亮。外邊的山水草木,皆看得明明白白。又將許多金鈴玉片,散掛在幃幔中間。車行時,搖蕩的鏗鏗鏘鏘,就如奏細樂一般。任車中百般笑語,外邊總不聽見。一路上要行幸宮女,俱可恣心而為,故叫做御女車。煬帝看了滿心歡喜道:“此車制得甚妙,途中不憂寂寞矣!”遂厚賞何安。-《隋煬帝艷史》제13회 -, - 펑궈차오,《중국고대성학보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