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자경 (문단 편집) === 1980년대 === 1983년에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어머니의 권유로 미스 말레이시아에 나가 우승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스 월드]] 대회에 [[말레이시아]] 대표로 출전했다가 입상하지 못했지만,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뭄바 페스티벌 미녀 대회에서는 우승하여 미스 뭄바가 되어 연예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때 훗날 결혼하는 반적생이 경영하는 홍콩의 덕보(德寶 또는 D & B)필름[* 1984년에 설립되었는데, 홍콩에 도는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반적생이 양자경을 보자마자 반해서 그녀를 데뷔시키기 위해 위해 설립했다고 한다. 어쨌든 반적생이 양자경을 알게된 1984년에 설립되었으며, 돈지랄로 당시 톱클래스 배우였던 홍금보와 가수겸 배우 임자상, 감독 서극을 영입하여 신생사였음에도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이 영화사가 제작한 작품중 가장 명작으로 꼽는 영화는 [[주윤발]], [[종초홍]] 주연의 "가을날의 동화" (1987) 공교롭게도 반적생이 양자경과 이혼한 직후인 1992년에 청산했다.]과 계약하여 본격적으로 [[홍콩]] 영화계에 진출하였다. 연예인 데뷔 첫 CF는 성룡과 출연한 [[https://en.wikipedia.org/wiki/Guy_Laroche|기라로쉬(Guy Laroche)]] 광고였다. || {{{#!wiki style="margin:-6px -10px" [youtube(4BRYJz3eQgU)]}}} || || '''성룡과 함께한 1984년 기라로쉬 시계 CF''' || 영화 데뷔작은 덕보필름이 제작하고 1984년 [[홍금보]]와 임자상이 주연한 "The Owl vs Bombo"[* 홍금보의 범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개봉했는데 홍금보가 감독과 주연을 맡았는데 시드니 포이티어가 나온 "언제나 마음은 태양 (To Sir With Love, 1967)" 줄거리를 거의 베낀 거였다. 우습게도 한국에선 1989년 7월 15일에서야 조연인 양자경이 주인공인 양 뻥치며 당시 은퇴한 양자경 마지막 영화라고(극장에서 한 예고에선 이 영화가 양자경의 마지막 영화라는 자막까지 있었다.) 홍보했었다.]였는데, 잠깐 나오는 조연이었다. 이어 하일복성에도 카메오[* 유도 강사 역.]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5년에 개봉한 [[예스 마담]](11월 개봉)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액션배우 커리어를 시작한다. 당시 홍콩에서는 성룡의 프로텍터 (원제 위룡맹탐)가 흥행에 성공하자 홍콩영화계 특유의 아류작 제작 경향으로 경찰물이 우후죽순[* 이해 나온 경찰물로 가장 걸작이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12월개봉)이다. 그리고 [[이수현(홍콩)|이수현]]의 황가반 등등이 있다.]으로 나오기 시작했지만, 예스마담 시리즈는 양자경을 앞세운 보기 드문 여성액션을 보여줘서 이런 아류작 가운데에서도 오리지널 느낌를 갖게 된다.[* 비슷하게 희소한 아동액션물로는 "호소자" 시리즈가 있었다.] 양자경은 여배우로서 홍콩에서 이전까지 없었던 액션[* 1970년대 유행했던 홍콩 무협영화에는 여성액션을 보여주는 무술계 여배우들이 좀 있었지만 , 이들은 1970년대까지 활약하다 무협영화가 점차 쇠퇴하는 80년대 이르러 점점 사라졌다. 정패패, 하리리, 상관영봉, 모영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데, '금연자'로 불리며 여성 무술액션의 정점으로 불렸던 정패패는 70년대 이른 은퇴를 했고, 그녀의 라이벌격인 '철낭자' 하리리도 얼마 가지 않아 은퇴했다. 여자 이소룡이라 불리며 뛰어난 무술실력을 자랑한 모영도 80년대 이후로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으며, 정패패의 후계자 사시 , <소림사 18동인>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대만 출신 여배우 상관영봉도 힘을 잃었다. 그나마 후발주자인 [[혜영홍]] 정도가 남았지만, 모르는 이가 거의 없는 양자경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을 보여주는데, 액션중에 특히 악당에게 등뒤에서 백허그하는 식으로 붙들린 상태에서 발을 자기 머리 높이로 들어올려 뒤편의 악당 머리를 차서 물리치는 액션이 트레이드 마크다.[* 다만 예스마담 1에서는 이 액션은 [[신시아 로스록]]만이 보여준다.] 2017년도에 55세로 출연한 TV 드라마 [[스타 트렉: 디스커버리]]에서도 [[가브리엘 로르카]] 역을 맡은 [[제이슨 아이작스]]와의 격투 장면 중에 이런 액션을 보였다. 서구권 언론에서도 이 발차기가 인상적인지 양자경의 액션을 말할 때 kick ass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단순히 격투기에 능하다고 할 수 있는 동작이 아니라 대단한 유연성이 필요한 동작이라, 액션연기로 유명한 배우들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체특성상 여자보다 유연성이 부족한 남자의 경우, 무술에 매우 뛰어나고 액션배우로서 성공했는데도 이 동작만큼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려서부터 발레를 해서 몸이 무척 유연하기 때문에 가능한 액션이다. 양자경 이외에 이 정도로 유연한 발차기를 할 수 있는 액션배우는 [[장쯔이]]나 [[유역비]] 정도 밖에 없다.[* 세 사람 모두 어려서부터 춤을 배웠기 때문에 유연성이 대단하며, 그중에서도 양자경과 장쯔이는 아예 전문적인 댄서가 되려고 춤을 전공했던 사람들이다.] 예스마담 시리즈는 1,2,3,4편이 나왔지만, 사실 양자경이 맡은 주인공이 홍콩 경시청의 여성 형사반장이라는 거 빼고는 주연의 이름도 모두 다른 걸로 봐서는 연속성은 없다고 보는게 맞다.[* 주연의 이름이 1편에서는 오락천(吳洛茜), 2편에서는 양자(楊子), 3편에서는 아경(阿瓊), 4편에서는 양녕(楊寧)] 하지만 액션영화로 유명했던 홍콩영화계에서도 예스마담 시리즈는 희소한 여성액션물이었기 때문에 양자경은 스타가 되었고, 국내에서도 양자경이 여성 액션배우로 상당한 인지도를 쌓게 되 것은 [[예스 마담]] 시리즈 시절부터다. 양자경은 예스마담 1~4(원제는 차례로 황가사저, 황가전사, 중화전사, 통천대도)로 스타덤에 오르지만, 예스마담4를 끝으로 덕보필름의 CEO인 반적생과 결혼을 발표하면서 1988년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데, 반적생이 조강지처와 이혼하면서 양자경과 재혼했기 때문에 좀 구설에 올랐던 결혼이었다. 특히 반적생의 조강지처인 양민덕(楊敏德)은 중국이 공산화될때 홍콩으로 도피한 상하이 재벌의 맏딸로 [[MIT]], [[하버드대학]] 출신으로 반적생과 동업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반적생의 초기 성공을 도왔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홍콩영화 특유의 속편 우려먹기로 양자경 은퇴후에도 양리칭 및 기타 여배우들에 의해 홍콩영화 몰락기인 1990년대 중반까지 10여편에 가까운 시리즈가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