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위 (문단 편집) == 일본에서의 양위 == 중세 일본의 [[천황]]은 후계자에게 양위하고 상황으로서 [[인세이]]를 행하는 것을 사실상 관습으로 하였다. 그것이 전형으로서 확실히 굳어진 것은 [[시라카와 덴노]]가 인세이를 행한 뒤였다. 그 뒤로 꾸준히 천황은 양위 후 상황이 되어 양위 후 살기 위하여 마련된 고쇼인 [[선동어소]]를 짓고 살았다. 그러한 전통이 일시 단절되었던 것은 [[고츠치미카도 덴노]]가 양위치 못하고 죽은 이후였다. 이 시기는 바로 그 유명한 [[오닌의 난]]과 메이오 정변이 있던 시기, 즉 [[센고쿠 시대]] 초기였다. 전국이 개막한 뒤 조정의 상황이 점차 악화되었기 때문에, 고츠치미카도 이후의 천황은 양위의 의례를 하거나 선동어소를 지을 수가 없었고, 거의 그 생을 다함으로서 재위를 끝내게 되었다. 그러한 양태는 [[오기마치 덴노]] 때까지 지속되었다. 오기마치 덴노 시기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집권하여 키나이가 안정되었고, 조정의 재정도 어느 정도 충족된 상태였다. 근대 이후의 일본에서는 [[황실전범(일본 제국)|황실전범]]을 제정하면서 양위에 대한 규정을 넣지 않아 양위가 불가능하게 하였다. 이는 과거 양위를 이용해 [[인세이]]와 같은 방식의 통치로 천황의 통치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이다. 패전 이후 천황의 정치적 권한이 완전히 제거된 현대에도 [[황실전범]]에 양위 관련 규정은 없는데, 이에 대해 [[궁내청]]은 2001년에 외압에 의한 퇴위나 자의적인 퇴위를 막아 천황의 지위를 안정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다만 황실전범에 양위 규정이 없을 뿐 황실전범이 명시적으로 양위를 막는 것은 아니라, 2019년에 있었던 [[아키히토]] 상황의 생전 퇴위는 아키히토에 한정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