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업 (문단 편집) === 북한 시절 === 본래 이름은 양중귀(楊重貴)로 아버지 양신이 인주를 점거하고 자사를 칭하면서 북한에 귀부했으며, 하동절도사 유숭과 관계를 맺기 위해 양중귀는 태원에 볼모로 갔다. 유숭의 양손자가 되어 이름을 유계업(劉繼業)으로 바꿨으며, 용맹으로 이름을 날리고 보위지휘사, 건웅군절도사 등을 지냈고 뛰어난 전공으로 무적(無敵)이라 불렸다. 968년에 유계원이 즉위하고 송나라의 군사가 오면서 북한에서 요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는데, 유계업은 시위도우후로 있으면서 풍진가와 함께 단백곡으로 출진했다. 969년에 단백곡에서 주둔했다가 정탐을 보낸 진정산이 송군에게 항복하자 풍진가와 함께 달아나 진양으로 갔고 이로 인해 병권을 빼앗겼다. 송군이 태원성을 공격해 포위하자 곽무위가 성을 나가 공격하려고 하면서 곽수빈과 함께 도우려 했는데, 유계업은 말로 인해 발을 다치면서 군사를 거두어 성으로 들어갔다. 곽수빈도 길을 잃고 유계업을 찾다가 돌아가고 곽무위도 홀로 갈 수 없어 돌아가면서 공격은 무산되었다. 5월 2일에 태원의 남쪽 성에서 물이 빠져 성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태원성을 지켜 송군이 물러났으며, 979년에 송군의 공격으로 유계원이 항복했음에도 유계업은 성을 점거하고 항전했다가 송나라에서 유계원을 시켜 부르자 항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