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승호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 [[파일:external/bm.gametree.co.kr/tu24la5z.jpg|width=220]] || || 젊은 시절인 [[OB 베어스]] 현역 때의 사진[* 선수 시절을 통틀어 성적이 변변치 못했다. 가장 성적이 좋았던 시즌 성적이 2010 시즌 불사조라면서 까이던 [[박영태]] 전 롯데 수석코치보다 못하다.] || 데뷔는 [[실업야구]]에서 했다. 프로선수로서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해태 타이거즈]]에서, [[1986년]]부터는 [[OB 베어스]]에서 뛰었다. 주로 [[백업]] [[2루수]], [[3루수]]로 활약했고 [[한대화]] 트레이드[* 한대화 ↔ 황기선·양승호, 서울 팀에서 뛴다는 생각 때문인지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때 OB로 이적하여 [[김성근]] 감독 밑에서 1년을 뛰었다. 통산 타격 기록은 4시즌 동안 195경기 출장, 467 타석에서 [[타율]] 0.223, [[홈런]] 4, [[타점]] 41, [[OPS]] 0.585. 선수시절 자랑할만한 경력은 [[해태 타이거즈]]의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4번타자를 '''한 달동안''' 맡은 것과[* 당시 해태를 말하려면 '소수정예'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였으며 선수층은 얇아도 주전의 수준은 무시무시했다. 당시 [[김성한]], [[김봉연]], [[김종모]]의 성적을 보면 실제로 양승호가 이들보다 더 잘한 건 아니고 [[김응룡]] 감독이 선수들을 자극하기 위해 잠시 넣은 것이다.] [[1983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대타로 나와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때려낸 정도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2&aid=0002309058|파랑새존에 대하여 언급할 때 나왔던 이야기]]. 전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인 [[박영태]]와 맞먹을 정도로 수비실력도 안 좋았는데 195경기에 출장하는 동안 [[실책(야구)|실책]]을 18개 저질러서 경기당 평균실책수가 0.092.[* 단, 내야수였으니 실책 수가 많은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프로야구]] 첫 번째 끝내기 실책의 주인공이다.[* 1983년 8월 3일 경기였는데, 이 경기는 [[1984년]] 연감의 명경기에 소개되기도 했다.] 프로 경력을 실력이 없는 무명 선수로 마쳤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235218|김응룡 감독의 욕을 실컷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