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남조) (문단 편집) == 내면 == 양의 치세가 [[육조시대]]에서 유일하게 사람다운 시대라 꼽히는 이유는 다른 시대에 유독 [[폭군]]과 [[암군]]이 유독 즐비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아보이는 것이고 사실상 이 시대도 그리 [[태평성대]]는 아니었다. 건국을 선포한 지 겨우 40일 만에 소연의 최측근이자 [[외척|외척(外戚)]] 세력의 중심인 장홍책(張弘策)이 [[소보권|동혼후]]의 잔당들에게 살해당했으며 소연이 유독 자신의 친족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에 건국에 큰 공을 세운 등원기(鄧元起)가 겨우 군사를 재정비하기 위해 [[익주|익주(益州)]]의 양식과 기계를 채웠는데 그 때문에 창고에 남는 것이 없어서 익주자사(益州刺史) 소연조(蕭淵藻)는 등원기를 원망하며 그에게 등원기의 명마를 요구했다. 이에 소연조는 등원기가 술에 취한 것을 틈타 그를 살해했는데 이때는 양이 건국된 지 겨우 3년 만이었다. 그럼에도 소연은 소연조를 나무라는 데로 끝났고 겨우 관직이 내려가는 데에 멈췄다. 이에 남사의 저술가 [[이연수(당나라)|이연수(李延壽)]]는 「등원기는 근면하여 마침내 위아래와 화목했고 공적은 오직 영토를 새로 얻은 것이나, 수고하고 일을 도모하려하지 않았으니 화란(禍亂)의 기회가 먼저 함정에 빠뜨렸다. 관군(冠軍)장군으로 폄하한 것은 형벌로는 이미 가벼운 것이니 양(梁)의 정치와 형벌은 이에 실종되었다. 친척을 사사로이 하는 실마리는 이것으로부터 열렸으니, 수명이 길지 않은 것 역시 마땅하지 않은가! 」라 평했다. 즉 나라가 건국된 지 3년도 안 돼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이것은 후대에도 전해져 황족들이 백성들을 수탈하고 황녀들과 간통하는 등 심각한 상태로 번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