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약탈 (문단 편집) === 근대 === [[나폴레옹]] 시대에 와서 약탈 행위는 절정에 이르렀는데, 징집된 국민병이라 해도 [[민족주의]]로 무장되어 약탈을 보내도 탈영할 위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육군은 이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보급]] 관리가 소홀히 이루어지며,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큰 고생을 겪고, 이내 [[러시아 원정]]에서 종국을 맞고 말았다. 이때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프랑스군은 명목상으로 [[국채|전시채권]]을 발행하여 나중에 파리에 오면 돈으로 바꿔주겠다 하고 [[징발]]을 시행했는데, 사실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서 합법적인 약탈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프랑스군이 돈을 내고 물자를 현지 주민들로부터 사들이는 경우도 있기는 했는데, 문제는 그 돈의 대부분이 [[위조지폐]]였다는 사실(...). 그런데 이후 [[스위스]]의 부르 생 피에르란 마을에서 장장 180년 넘는 동안 나폴레옹의 채권과 친서를 가지고 있다가 1984년에 프랑스 대통령이 방문하자 그걸 보여줘서 보상금을 받은 사례가 있다. 프랑스-스위스 우호를 위한 상징적인 일화라고 할 수 있다.[[https://news.joins.com/article/1766009|기사]],[[https://nasica1.tistory.com/1|관련 글]] 이 시기 서구열강은 전 세계에서 [[문화재]]를 약탈해 긁어모았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독일]]의 [[페르가몬 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은 대표적인 약탈 문화재 전시관으로 현대에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만큼 거대한 스케일은 아니지만 [[일본]] 역시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오구라 컬렉션]]이나 [[가루베 지온]] 등 한국 문화재 약탈로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일본인이 약탈한 중앙아시아의 문화재가 한국에 소장되어 있기도 한데, 자세한 것은 [[오타니 고즈이]], [[국립중앙박물관#s-3.2]] 문서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