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고보서 (문단 편집) == 행위로 의롭게 됨 ==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 >야고보서 2장 21-24절. 개신교 새번역[* 공동번역성서는 이 부분을 의역하여 새번역 성경으로 적었다.]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서가 [[바울로]] 신학의 [[이신칭의]]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여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경멸했다. 이신칭의는 개신교의 핵심 중 핵심이기 때문에 개신교 기준에서 야고보서는 일견 이질적으로 보이는 문헌이다. 루터는 개신교 정경을 정할 때 야고보서를 정경에서 빼야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다. 현대 개신교에서는 바울의 서신은 사람이 의롭다고 칭하는 원인을, 야고보서는 그렇게 해서 의롭다고 칭한 사람이 그 결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기 때문에 두 서신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본다.[[http://www.duranno.com/bdictionary/result_juseok_detail.asp?jid=685|#]] 어차피 개신교의 큰 구원의 틀은 칭의-'''성화'''-영화로, 칭의 이후의 성화를 필수적으로 언급하므로 본서의 행함구절을 문제 삼지 않는다. [[바울로 서간]]을 자세히 읽어보면, 바울로가 말하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하느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말한다.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한 이후 바울로 서간에서 말하는 진정한 믿음을 발휘하게 되면,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고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발휘하여 이삭을 죽이려고 했던 것 같이, 성도가 갈등 상황에서 믿음을 발휘하여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에 순종하기에는 현재 상태의 믿음이 부족하기에[* 믿음이 아예 없던 상태라는 것은 아니다.] 믿음을 더욱 발휘하여 순종할 수 있는 힘을 더 많이 받아[* 그 분량은 개인의 노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평소의 믿음의 상태에서 이런 결단이 필요한 믿음을 더 발휘하여 순종할 때 소위 말하는 상급이 쌓인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야고보서는 믿음의 상태에서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을 행할 때, 믿음 뿐만이 아니라 그 행함으로도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진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느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을만한 행함이 삶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행함이 마땅히 있어야 할 상황에서 행함이 전혀 없는 믿음은 애초에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을리가 없는 가짜 믿음이고, 하느님이 인정하실만한 진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행함은 믿음의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했던 믿음이 진짜임을 증명함으로써 그 믿음을 온전하게 한다는 것이 야고보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가톨릭 등에서 행함으로도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개신교에서는 행위구원론 취급 하기도 하는데, 가톨릭과 개신교 간에 마찰이 있는 성사 관련 내용을 제외하면 그런 행함이 있는 사람은 애초에 그 행위를 하기 전에 믿음으로 이미 구원 자체는 받은 사람인데다가,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구원 받지 못했던 사람이 구원 받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 행위는 믿음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여서 [[로마서]]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하느님의 은혜 없이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자기 힘으로만 행하는 행위와 결이 다르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아무리 전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등의 엄청난 희생을 한다고 해도, 그 행위를 한 마음의 동기가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면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 즉, 겉으로 보이는 어떤 행위 자체를 하는 데에 급급해서는 안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적절한 기회에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서]]의 개신교 개역성경 번역판에 나오는 '오직 믿음'이라는 말과 야고보서가 모순되어 보일 수 있으나, [[마르틴 루터]]가 '오직 믿음'을 내세우며 종교개혁을 한 결과로, [[로마서]] 원문에는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없음에도 한국어 개역성경은 원문에 없는 '오직'이라는 말을 집어넣어 로마서를 번역한 것이다. 바울로는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의 율법적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는데, 바울로가 비판하는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면서 교만하게 자신의 행위를 내세우려 하고, 유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성도들을 정죄하는 가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야고보서에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선을 행하여 그 행위로 하느님을 기쁘시도록 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은혜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로가 말하는 율법주의와는 다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시선[*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릴 필요가 있으나,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이나 대가를 의식하며 한 행위이냐, 순수하게 하느님을 기쁘시도록 해드리기 위해 한 행위이냐의 차이인 것이다. 다만 올바른 믿음에서 나온 선행을 했다고 할지라도, 나중에 자신의 그 행위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이에 대해 마땅히 하느님의 기쁨이 되는 것 이외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교만한 마음이 밀려올 수 있으므로, 이것 또한 믿음을 가지고 이겨내야 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루가의 복음서 17장 10절)] 다만, 자신의 선행을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순종을 할 때에, 그에 따르는 곤란한 상황을 하느님의 은혜로 어떻게든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은 문제가 없다. 믿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다 천국 간다는 [[구원파]]적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바울로 서간]]과 야고보서의 칭의 방법이 다르다고, 두 서신이 대상으로 하는 성도들이 각각 다르다는 엉터리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야고보서가 적용되는 시대와 바울로서신이 적용되는 시대가 다르다던가,[*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하였습니다. (로마서 4장 2-3절)[br][br]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서 2장 24절)[br][br]이 구절들을 볼 때 야고보서가 쓰여진 시대에 이미 바울로의 이신칭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교회 안에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야고보서는 유대인에게 바울로서신은 이방인에게 적용된다는 말을 들으면[*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2장 1-2절)] [[이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