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애설스탠 (문단 편집) === 시대적 배경 === 고대의 잉글랜드는 여러 개의 작은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으나, 9세기에 접어들면서 주요 4개 국가로 대충 정리되었다. 이 네 국가는 [[웨식스]], [[머시아]], [[노섬브리아]], [[동앵글리아]]였는데, 이들 간에 당연히 국력의 격차와 흥망성쇠는 있었다. 예를 들어 8세기경에는 머시아가 가장 강력했었고, 9세기 초에는 웨식스가 가장 강했었다. 하여간 이들 네 나라는 자기들끼리 툭탁거리면서 그런대로 지내고 있었는데, 9세기 중반이 되면서 본격적인 위기가 닥치게 된다. [[바이킹]]족의 침략이 본격화된 것이다. 9세기 중반부터 바이킹족의 침략이 거세지면서 이들 네 왕국이 털리기 시작했고, 결국 9세기 후반에는 [[동앵글리아]], [[노섬브리아]], [[머시아]]가 바이킹에게 정복당했다. 당시 최강자였던 [[웨식스]]조차 나라가 거의 점령당하는 지경으로까지 몰리게 되었다. 이때 [[알프레드 대왕]]이 등장했다. 잉글랜드의 왕 중 유일하게 '대왕'으로 불리는 왕, 구국의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871년에 웨식스의 왕위에 오른 [[알프레드 대왕]]은 초반 5~6년간은 일방적으로 털리긴 했지만, 웨식스는 [[알프레드 대왕]]의 지휘 아래 피터지게 바이킹과 싸워나갔다. 878년, [[알프레드 대왕]]은 운명의 싸움인 '''에딩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나라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886년에 동앵글리아의 왕 구트룸 1세와 [[알프레드 대왕]]은 대충 합의를 보고 잉글랜드를 갈라 먹게 되었다. 즉, 머시아의 서쪽을 뚝 떼서 [[알프레드 대왕]]이 먹고, 나머지 동쪽은 바이킹이 가져가서 그들이 점령한 동앵글리아와 합치는 것으로 협정을 맺은 것이다. 몇년 뒤인 890년에 바이킹은 협정을 무시하고 다시 침략해 왔으나 [[알프레드 대왕]]은 다시 이들을 물리쳤다. 이후, [[알프레드 대왕]]의 뒤를 이은 [[대 에드워드]] 왕 또한 만만찮은 활약을 하여 바이킹이 점령한 머시아와 동앵글리아를 정복해 나갔다. 덕택에 그가 죽었을 때에는 남부 노섬브리아에 있는 [[요크]] 왕국만이 바이킹 영토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왕위에 오른 애설스탠은 대외적으로 다양한 활약을 하며 여러 업적을 세웠다. 그 결과, '''애설스탠은 앵글로색슨 전체를 지배한 최초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나 [[웨일스]]의 왕들을 지배한, 브리튼 섬의 왕 중 왕의 자리에도 오르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