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골라 (문단 편집) === [[앙골라 내전]]([[1975년]] ~ [[2002년]]) === 앙골라를 피바다로 만들어 버린 이 내전은 당시 앙골라에 있던 세 부족의 갈등, 냉전 시기 이데올로기 문제, 그리고 앙골라의 자원을 둘러싼 열강들의 개입에서 비롯된다. 최초에는 당시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주요 독립군 단체인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 음분두족이 지지하는 공산 계열의 독립 단체.] 앙골라민족해방전선(FNLA),[* 앙골라인민연합(UPA)의 후신으로, 바콩고족 중심의 우익적 성향 단체. 독립전쟁 시기 때부터 자신들이 유일한 앙골라의 독립 단체라고 주장하며 다른 독립 단체를 공격하기도 했다.] 앙골라전면독립연맹(UNITA)[* 앙골라인민연합(UPA)의 지나친 종족주의에 반발하여 분리된 독립 단체.]들의 인물들이 골고루 섞인 내각을 구성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게 된다. 앙골라의 45%에 달하는 사람들이 UNITA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UNITA는 선거를 통한 정당제를 통한 내각 구성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FNLA와 MPLA는 이에 반발하였으며, 특히 이들은 UNITA보다 군사적인 힘이 강하였기에 무력을 통한 정권 탈취를 꿈꾸게 된다. 결국 MPLA는 군사력으로 주도권을 잡고 공산 정권인 [[앙골라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UNITA와 FNLA가 임시적으로 동맹을 맺고 별개의 정부인 앙골라 민주 공화국을 구성하게 되었고, [[중국]]과 [[미국]],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은 이 정부를 지원하였다. 덕분에 당시 미국과 중국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펴는 남아공과 결탁했다면서 아프리카 각 국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물론 당시 미국과 중국도 이러한 여타 아프리카 나라들의 반발에 대해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며 설득하는 데 진땀을 뺐다.] 반면 소련과 쿠바는 본격적으로 MPLA를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군사적 힘이 열세였던 UNITA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의 앙골라 주둔을 추진하여 전세 역전을 도모했고, 이에 남아공군은 앙골라 보호와 [[나미비아]] 독립 투쟁 단체를 토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앙골라에 주둔하면서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다. 이에 반발하여 쿠바 역시도 대거 군사 개입을 하였으며, 내전 중에 [[쿠바군]]과 남아공군이 직접 충돌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내전]]은 국제화되고 냉전의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내전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치열하게 전개된다. 그러던 1978년에 FNLA가 MPLA와의 평화 협정을 맺고 전쟁을 중단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MPLA와 UNITA의 2파전이 된다. 20여년 간의 독립 전쟁 이후 10년 넘게 지속된 내전으로 인하여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았고 국토는 황폐해졌다. 이러한 내전은 냉전이 종식되면서 종식될 '''뻔''' 했다. 1988년 쿠바와 남아공은 협정을 통하여 앙골라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이를 감시하기 위하여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병되었다. 그리고 MPLA 정부는 일당제가 아니라 복수정당제를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1991년]] 미국, 소련, 포르투갈의 중재 하에 MPLA와 UNITA는 1차 평화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선거와 정전을 감시하기 위한 유엔 평화유지군이 재차 파병되었다. 그리고 [[1992년]] 앙골라 공화국의 신헌법이 제정되고 선거가 이루어진다. 당시 대선은 MPLA의 승리로 끝났는데, UNITA는 이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내전을 일으켰다. 사실 앙골라 내전이 1975년 이래 끝나지 않았던 이유는 정부(MPLA)와 UNITA가 앙골라의 풍부한 지하 자원인 석유와 [[다이아몬드]]를 각각 장악하여 경제력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앙골라는 산유국이며, [[다이아몬드]] 산출량도 높다(다이아몬드 생산량 세계 4위). 특히 [[석유]]는 매장량이 100억 배럴+a로 추정되어 세계 석유산업계가 군침을 삼키고 있다. 또 다른 결정적인 요인은 종족간 대립이다. UNITA는 인구의 37%를 차지하는 중부의 오빔분두족이 주도했으며, MPLA는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북부의 암분두족이 이끌고 있었고, FNLA는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최북단의 바콩고족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처럼 여러 종족들이 각각의 이념 및 자원 대결을 펼치면서 내전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무려 150만 명이 사망하고 1993~94년 사이에는 하루 평균 1천 명이 희생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