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압록강 (문단 편집) == 명칭 == * 중국어 독음으로는 '야루장(鸭绿江, Yālùjiāng)'이라고 부르며, [[만주어]]로는 'ᠶᠠᠯᡠ ᡠᠯᠠ (Yalu Ula, 야루 우라)'라 불렀다. 영어로는 중국어 명칭을 음역한 '얄루 강(Yalu River)'이라는 표기가 널리 쓰인다. * 압록(鴨綠)이라는 지명은 [[한국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고구려]]에 관한 기록에서 '서압록곡'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는 '압록'이 고구려에서 사용되는 지명사(地名詞)였다는 것을 나타내는 한 예시이다. >안류(晏留)가 왕에게 말하기를, “저는 용렬하고 어리석어 본래 큰 정치에 참여하기 부족합니다. '''서압록곡(西鴨淥谷)''' 좌물촌(左勿村)의 을파소(乙巴素)는 유리왕(琉璃王)대 대신(大臣)인 을소(乙素)의 후손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지혜와 사려가 깊지만,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힘들여 밭을 갈아 스스로 먹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 >晏留言於王曰. 微臣庸愚, 固不足以叅大政. '''西鴨淥谷'''左勿村乙巴素者, 琉璃王大臣乙素之孫也, 性質剛毅, 智慮淵深, 不見用於丗, 力田自給. 大王若欲理國, 非此人則不可. >---- >《삼국사기》 권16, 「고구려본기」 4 고국천왕 13년 또한 [[당나라]] 대에 저술된 《한원(翰苑)》 고려지에 이르기를, "마자수(馬訾水)는, [[고구려|고려(고구려)]]에서는 엄수(淹水)라고도 하며 지금 이름은 압록수다. '''그 나라'''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이르길, '물줄기는 동북녘 말갈국 백산에서 비롯되어 나온다. '''빛깔이 [[오리]] 대가리를 닮았고''', 때문에 흔히 압록수라 부른다'라고 한다."고 전하고 있다. 압록강이라는 명칭의 유래가 고구려에서 나왔다고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는 문헌으로 그 신빙성이 더욱 높다. 일설에 따르면 압록강은 [[한강]]의 옛 이름이기도 한 [[아리수]]라 불렸으며, [[아리]]는 [[순우리말]]로 '크다' 또는 '물'을 뜻한다고 한다. 후자의 설을 지지하는 국문학자 [[서정범]]은 《국어어원사전》에서 '압록(鴨綠)은 아리의 [[전사#s-4.2|전사]](轉寫)라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한편, 고구려 유민인 [[고자(고구려)|고자]]의 묘지명에서는 '먼 조상인 고밀이 [[모용부]] [[선비족]]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금문철권(金文鐵券)을 하사받고 후작에 제수되었다'고 하며, 이 금문철권에 '압록강이 마를 때까지 작위가 이어질 것'이라는(즉 영원히 세습을 허가하겠다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묘지명에서는 후한말의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전연]]의 고구려 침입이 있었던 [[오호십육국시대]]의 일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지만, 아무튼 이에 따르면 압록이라는 단어가 쓰인 연대는 엄청나게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셈이다. * [[만주어]]에서 유래하여 [[한국어]]와 [[중국어]] 지명으로 유입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가능성은 떨어진다. 만주어로 경계를 뜻하는 '야루(yalu)'를 한자로 음차하는 과정에서 '얄루' 곧 '압록'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설인데, 상술하듯 이미 당나라 대에 '압록강'이라는 명칭이 통용되었음을 간과한 주장이다. 당시 통용되던 [[중고한어]] 음가로 '압록(鴨綠)'의 독음은 /ʔˠap̚ lɨok̚/이다. 이는 오히려 오늘날의 한국 한자음과 유사할지언정 만주어 '야루'나 현대 표준 중국어 발음 '야루'와는 거리가 멀다. 이 설은 고구려의 지명에 압록곡이 존재했다는 기록 또한 설명할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