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암군 (문단 편집) ===== [[고려]] ===== * [[정종(고려 3대)|정종(3대)]](945 ~ 949)◎ : 처음부터 왕의 자리에 야심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북쪽 호족[* 패강진 일대 호족들과 서경총관이었던 왕식렴 세력을 일컫는다.]들의 도움을 받아 왕규의 난을 계기로 사실상 [[혜종(고려)|형]]과 [[왕규]] 세력을 몰아내고 집권하였다. 하지만 재위기간 내내 자신의 즉위를 도운 [[왕식렴]] 세력에게 휘둘리다시피 했으며 왕권강화를 위해 시도한 서경 천도와 광군 양성은[* 물론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요나라|거란]]의 침략을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요나라|거란]]은 송나라를 치기 전 배후를 안전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온갖 무리수가 난무한 탓에 왕권 강화는커녕 민심 이반만 불러오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오죽하면 그가 죽자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다.] 결국 얼마 있지 않아 재위 4년만에 죽고 [[광종(고려)|동생]]이 뒤를 잇게 된다. 하지만 그가 죽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기록이 있어 최종 승자인 [[광종(고려)|동생]] 세력에 의해 기록이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의 사후 자식이었던 경춘원군이 광종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다.] * [[목종(고려)|목종]](997 ~ 1010)◆△◎ : 초창기에는 적극적으로 통치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자신을 지지해주어야 할 모후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불륜을 저지른 걸로도 모자라,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를 왕위에 올리려는 짓까지 벌이자 멘탈이 나가버리면서 암군이 되었다. 게다가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해 엉뚱하게도 [[남색]]에 빠져버리면서 결국 [[강조의 정변]]과 [[제2차 여요전쟁]]을 일으키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 [[의종(고려)|의종]](1146 ~ 1170)▲△ : [[무신정변]]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암군이라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는 임금. 그러나 의종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무신들은 더더욱 막장이었는지라, 의종 복위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 예가 [[김보당의 난]]. 주도자인 [[김보당]]의 경우 평소 의종의 실정에 비판적인 인물이라서 무신정변 당시에는 무사했었던 것이다.] * [[충혜왕]](1330 ~ 1332)(1339 ~ 1343)★▲△ : 고려판 [[해릉양왕]]. * [[공민왕]](1351 ~ 1374)▲◎ : [[노국대장공주]] 사후 그녀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임금은 결국 정사에 소홀해졌고, 결국 [[홍륜]]에 손에 시해당하게 된다. 다만 공민왕 말엽의 난행이 기록되어있는 고려사가 조선 왕조에서 편찬되었기에 어느 정도 폄하되어 있을 여지가 크며 난행도 과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 [[우왕]](1374 ~ 1388)▲△◎ :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이인임]]에게 휘둘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온갖 기행들이 세세히 기록된 것을 보면 멀쩡한 임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조선 건국 세력인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왜곡과 윤색이 가해지고 거기에 혈통 논란으로 폄하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동정은 가능할지언정 왕으로서 보인 행보에 대해서는 모진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특히 [[위화도 회군|요동 정벌 시도]]만큼은 빼도박도 못하는 치명적인 [[실책]]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