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희정 (문단 편집) === [[충청남도지사]] === 노무현의 심복이었지만 징역살이로 그럴듯한 정치적 커리어도 없었고, 노무현 정권이 10%도 안되는 참담한 지지율로 막을 내리며, 다른 난파선에서 탈출하듯 [[열린우리당]] 탈당 러쉬를 이루며 친노 진영이 몰락하게 되면서 안희정도 정치인으로 입신하기에는 글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 사분오열 되는 와중에 민주당을 지켰고 노무현의 사망 이후 지지자들의 결집, 정권 교체 이후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 등의 반사효과가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6.2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사실 당시 선거에서 보수층 표가 [[자유선진당]] [[박상돈]] 후보와 [[한나라당]] [[박해춘]] 후보로 분산되면서 어부지리를 누린 부분이 있다. 박상돈 후보와의 격차는 2% 남짓에 불과했기 때문에 보수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선거에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이 이때의 선거 패배 때 왜 여권에는 이광재,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냐며 아쉬워 하는 등 확실히 스타성을 입증해 보였다. 아무래도 친노진영으로 분류되는 정치인 중엔 그나마 온건파적 성향인 것도 한 몫한다. 이러한 중도적인 성향을 통해 중도층에게도 비교적 큰 호감을 얻었으며, 거물급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져나갔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의 충남지사 재선을 계기로 더이상 '친노'라는 수식어 없이도,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 세력화를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일부 민주당 강경 지지자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온건파적인 면모 때문에 약간의 비토 정서를 보이고 하지만 적어도 그 능력은 탁월하다고 인정할 정도이다. 물론 중도라는 것은 안희정 본인 혹은 그의 측근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가깝고, 안희정의 정치적 정체성은 본인 스스로 분명히 했듯 '진보'에 있다. 충남도지사 재선에 성공하고 차기 대권 주자로 거듭나며 자신감을 얻은 안희정은 스스로 '''[[김대중]]-[[노무현]]을 잇는 장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 안희정이 말하는 새정치는 새로운 진보와 보수의 틀을 만들자는거지 안철수처럼 그 제3지대를 구축하겠다는게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출중한 행정 능력과 대한민국 정치계의 메인 스트림으로 부활한 친노의 적통이고, 여야 동년배 정치인에 비해 돋보이는 수려한 외모[* 특히 홍콩의 영화배우이자 무술가인 [[견자단]]을 닮았다는 분들이 많다.], 준수한 화술과 논리력, 인생역정은 연설이나 토론, 방송, 유세 등에서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플러스적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19대 대선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전에는 대중적 인지도를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본인의 말처럼 '지방 사또' 정도의 정치인으로 남아있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할 수는 없었어도 전국적으로 상당히 주목받던 차세대 정치인임은 사실이며, [[충청 대망론]]의 대표주자로 미는 분위기도 있었다. 실제 충남지역에서는 행정가로서 보여준 탁월한 행정능력과 사람을 가리지 않는 인품에 대해 세대를 막론하고 안희정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여론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충청 민심을 증명하듯 2015년 9월에 '''충청인이 선호하는 '충청권' 정치인'''에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던 '''[[반기문]]'''(2위 - 11.4%)을 제치고 '''{{{#red 1위 - 26.6%}}}'''를 기록했다. 도지사로 재임하고 있는 '''충남지역(39.6%)'''에선 무려 10명중 4명이나 안희정을 선호했다. 그 외에 '''대전(23.8%)''', '''세종(34.8%)'''로 각각 지역에서 {{{#red 1위}}}이다. 한편으로 충북에선 상대적으로 약세였는데 10.8%로 반기문, [[이시종]]에 이어 3위에 올랐다.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382753|#]] 고무적인 것은 민주당의 취약점인 '''55세 이상'''의 장년층에서도 '''{{{#red 22.9%로 1위}}}'''를 차지했다는 것과, 선거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30~54세'''의 선호도가 '''30.3%'''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19~29세에선 18.4%의 선호도를 보였고 전체적으로 남녀간 지지차이(남성 26.4%, 여성 27.0%)는 미미했다. 이 여론조사를 통해 안희정이 '충청대망론'의 선두주자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2016년)|야]][[정의당|권]] 단일화 실패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대전광역시]]-[[충청남도]]-[[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서 집권 [[새누리당]]과 무승부[* 대전 새누리 3 : 4 더민주, 충남 새누리 6 : 5 더민주, 합치면 새누리 9 : 9 더민주가 된다(거기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세종의 [[이해찬]]을 합치면 1석 앞선다).]를 기록했고, 아울러 그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김종민(1964)|김종민]] 전 정무부지사(충남 논산-계룡-금산), [[조승래]] 전 비서실장(대전 유성 갑), [[정재호(1965)|정재호]] 전 정책특보(경기 고양 을)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안희정 마케팅'이 더민주 지지층에게 상당한 호소력이 있다는 점까지 입증했다. 이 중에서 김종민 후보는 그 '''[[피닉제]]'''의 독주를 꺾으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는 그 특유의 안정감으로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과 사분오열된 보수 정당으로 길 잃은 중도 ~ 중도 보수 지지층들이 안 지사에게 몰려 중도 - 보수 외연 확장성을 보여주며 대선 후보 선호도 2위까지 치고 올라갔었다. 유력 정치인들의 연령대에 비해서는 상당히 젊은편인 만큼[* 호적상 1965년 5월 1일생으로 2018년 3월 기준 만 52세.] 지금처럼 계속해서 순탄한 행보와 결정적인 성과 몇 가지를 내준다면 충분히 2022년 대권주자로 떠오를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잘생긴 얼굴로 인해 당대의 인기 아이돌 [[EXO]]에 비견되어 '''충남 엑소'''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신년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여권 지지자들이 차기 대통령으로 적합한 인물로 안희정이 꼭 거론될 정도였다. 그러나 2018년 밝혀진 비서 성폭행 사건으로 '''그가 바라던 대통령의 꿈과 정치 인생이 한 줌의 먼지가 되고 말았다.'''[* 성폭행 사건과 별개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루킹]]이 한 때 안희정을 응원하는 댓글을 작성해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안희정은 정치적 확인사살까지 당해버렸다.] 2019년 2월 1일 이뤄진 2심에서 10개의 혐의 중 9개가 인정되면서 징역 3년 6월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이후 같은 해 9월 9일 상고심에서 형이 확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