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회 (문단 편집) == 유교경전에서 == 공자와 안회와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논어에 실려있다. * 논어 선진편에 의하면 안연이 죽자, 안연의 부친인 안로는 공자의 수레를 팔아서 안연의 곽[* 관을 둘러싸는 바깥 덧널. 뒤에 나오기도 하지만 당시 예법상 평민은 곽을 쓸 수 없다.]을 만들자고 청했다. 공자는 '재주가 있거나 없거나 역시 각각 다 같은 아들이다. 내 아들 이가 죽었을 때 관만 있고 곽은 없었으니 내가 걸어다니기로 하고 곽을 만들어 줄 수도 있었으나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대부의 뒤를 따라다니는 사람이라 걸어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였다.[* 顔淵이 死커늘 顔路 請子之車하여 以爲之槨한대 子曰 才不才에 亦各言其子也니 鯉也死커늘 有棺而無槨하니 吾不徒行하여 以爲之槨은 以吾從大夫之後라 不可徒行也니라.] 즉 그렇게 좋아한 제자 안회가 죽고 난 다음에, 안회의 아버지가 공자의 수레를 팔아서 안회의 덧널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고 하자 공자가 거절하는 대목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 엄청 쪼잔하다라는 평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사실은 안회의 신분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안회는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평민의 예로 장례를 지내야 했고, 덧널을 쓰면 안되었던 것이다. * 역시 논어 선진편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안회가 죽은 다음에 공자의 제자들이 안회의 장례를 크게 치러주고싶어 했지만 공자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결국 안회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어주었는데, 공자는 이것이 예절에 어긋나며 자기 책임이 아니라 니들 책임이라고 꾸짖었다는 것이다.[* 顔淵이 死커늘 門人이 欲厚葬之한대 子曰 不可하니라 門人厚葬之한대 子曰 回也는 視予猶父也어늘 予不得視猶子也하니 非我也라 夫二三子也니라.] 그리고 이 전후에는 공자가 얼마나 안회를 좋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공자가 안회를 좋아한 것은 좋아한 것이고, 안회가 평민인 것은 평민인 것이다라는 것이다.[* 당시는 군주와 가신간의 살육이 끊이지 않던 전국시대이다. 공자는 주나라 예법을 처절할 정도로 지키내는 것이야말로 혼란스러운 전국시대를 끝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