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탈리아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하드리아누스 문 2.jpg]] 옛 성벽과 [[하드리아누스]] 문 기원전 260년경 [[페르가몬 왕국]]이 일대를 장악할 무렵 작은 항구가 있었다. 그러던 기원전 150년경 페르가몬의 전성기를 이어간 [[아탈로스 2세]]가 본격적으로 도시를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탈리아 (Ἀττάλεια)라 명명하였다. 당시 [[비티니아]]로부터 전쟁 배상금의 일환으로 20척의 함대를 인도받았던 아탈로스 2세는 강력한 해군을 건설하고자 하였고, 그 거점으로 아탈리아를 선정하였다. 따라서 아탈리아는 이후 위세를 떨치게 되는 페르가몬 해군의 기지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기원전 133년 아탈로스 2세의 조카이자 후계자 [[아탈로스 3세]]가 왕국을 로마에 넘긴 후 아탈리아는 [[로마 제국]]령 팜필리아 세쿤다 속주에 편성되었다. 다만 그 주도는 아탈리아 동북쪽의 [[페르게]]였다. 서기 1세기 중엽 사도 [[바울]]과 바르나바스가 전도 기행 중에 방문한[* [[사도행전]]에 따르면 페르게를 거쳐 아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크]]로 향한다. 다만 리디아의 아탈리아 (현 야나테페)와 종종 헷갈릴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후 아탈리아에는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30년에는 [[5현제]] 중 하나인 [[하드리아누스]]가 순행 도중 방문하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3개의 아치를 지닌 화려한 성문이 세워졌다. [[팍스 로마나]] 이후 페르게와 아스펜도스 등이 쇠퇴한 것에 반해 아탈리아는 여전히 중요성을 유지하였다. [[동로마 제국]]기에도 시가지가 성벽 밖으로 확장되고, 여러 성당들이 세워지는 등 번영하였다. 654년 [[이슬람 제국]]이 해전에 있어 첫 승을 거둔 돛대 해전이 아탈리아 서남쪽 해안에서 벌어졌다.[* 반대로 로마 입장에서 말하면 그 '지중해=로마의 호수' 프로파간다가 예전에 서쪽에서 [[반달족]]한테, 이번에는 동쪽에서 아랍한테 대패하면서 완전히 깨진 것이었다.] 이후 아탈리아는 [[사라센]] (아랍)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고, 그에 맞서기 위해 [[카리아]]와 팜필리아 일대에 조성된 키비레오톤 테마의 치소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