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창호 (문단 편집) === 점진전쟁론 === 그는 기본적으로 점진전쟁론을 견지하였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었던 [[이동휘]]와 같은 급진적인 전쟁론자와 갈등을 빚었다. 그가 생각하는 바는 대략 이러하다. >우리 민족의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에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려고 하시오? 우리나라가 독립이 못 되는 것이 다 나 때문이로구나 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요, 저 놈이 죽일 놈이요라고만 하고 가만 앉아 계시오?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요.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 될 공부를 아니하는 것이오?''' [[여운형]]은 이러한 안창호의 뜻을 따랐는데 여운형이 일본의 초청을 받고 일본행을 결심하자 여운형을 변호하면서 [[이동휘]]와 갈등하였다. 이동휘는 "일본과 타협하는 일"이라고 극구 반대했으나 안창호는 여운형을 믿고 일본행을 권유하였고 노잣돈까지 주었다고 한다. 이후에 여운형은 일본으로 건너가 회유에 굽히지 않고 [[도쿄시|도쿄]] [[테이코쿠 호텔]]에서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여 일본 정계를 술렁이게 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둔다. 강준식의 《적과 동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적을 알아야 하니까니 가서 니야기를 들어보라우. 이거 얼마 되딘 않지만." >"허나 임정 안팎에서 야단들입니다." >"뭐, 괜티않아. 나라 팔아먹는다구 야단들이디만, 팔아먹을 나라가 이시야 팔아먹디? 하하하."[* 안창호는 평안도 출신이기에 [[서북 방언]]을 사용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