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중근 (문단 편집) == 신앙 == >"의인들의 영혼은 [[야훼|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 [[가톨릭]] [[성경]] [[지혜서]], 3장 1절 - 7절. 안중근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다. 그 세례명은 [[사도 토마스|토마스]] (舊 도마)이다. 의거 직후 살인자란 이유로 가톨릭 신자로서 인정받지 못했으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1993년 8월 21일 "그분의 의거는 일제의 무력침략 앞에서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행위였고 정당방위이며 의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라며 안중근 의사의 행동이 더 큰 평화를 위한 노력이었음을 인정한다. 이후 순국 100주년을 맞은 2010년 3월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집전(集殿)으로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추모[[미사]]를 통해 천주교 신자임이 공인돼 공식적으로 천주교의 품안으로 들여졌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직전 [[천주교]] 신자로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7성사]] 중 하나인 [[병자성사]][* 당시에는 '종부성사'로 불리다가 20세기 중후반 이후 병자성사로 병칭. [[사제]]는 죽을 위험에 처한 천주교 신자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고해성사]]를 먼저 베푼 후 뒤이어 병자성사를 집전한다.]를 요구했으나 당시 [[한국천주교회]] 전체를 관할하는 조선대목구장이었던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는 안중근의 요구인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집행할 사제를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다행히도 [[니콜라 빌렘]] [[신부(성직자)|신부]]가 안중근의 고해성사를 듣고 병자성사를 집전해 주었고, 이로 인해 빌렘 신부는 뮈텔 주교에게 성무 집행의 자격을 정지당했다. 참고로 교구장 주교는 자기 [[교구]]의 문제가 있는 신부에게 성무집행을 정지할 권한이 있으나, 뮈텔 주교가 내린 성무집행정지는 본인이 친일 성향에 매몰돼 타당한 이유 없이 내렸기에 문제인 것이다. 빌렘 신부는 이것을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 [[교황청]]에 문의를 넣었고, 교황청은 뮈텔 주교의 성무집행정지 처분이 잘못됐음을 선언하고 효력을 취소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가톨릭교회]] 일각에서는,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했던 [[잔 다르크]]가 [[시성]]되었듯이, 안중근도 시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2011년 10월 31일,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안중근의 [[시복]](諡福)을 추진하는 업무에 착수했다고 한다.[[http://news.nate.com/view/20111031n06992|관련 기사]]. 제10회 가톨릭포럼에서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안드레아 [[주교]]는 "안 의사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모범"이라며, 안중근 의사가 "순교자"는 아니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신앙 고백함으로써 의연한 신앙의 자세를 견지한 증거자"라고 밝혔다. 염수정 주교는 안중근의 동양 평화 사상과 노력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으며 그분을 [[민족주의]] 관점에서만 평가되는 반쪽짜리 인간으로 만들지 않기를 당부한다며 서울대교구는 안중근 토마스가 시복되게 하고자 빠른 시일 내에 신학적 검토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시복을 추진 중에 있는 천주교 신자는 초대 서울대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1792-1835)를 비롯해 조선시대 및 한반도 근현대 신앙의 증인 570여 명이며, 여기에는 안중근도 포함되어 있다.[[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320386|관련기사]][[http://m.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84|관련기사]] 안중근의 삶을 [[이토 히로부미]] 살인에 한정하게 하지 않고 안중근이 처형되기 전 마지막 시기인 '동양 평화를 목적한 囚人(수인)기'를 조명하면 [[성인(기독교)|성인]]으로 공경할 근거가 있다고 본 것이다. [[성경]]에도 안중근과 비슷한 사례로 구약시대의 [[유디트|유딧]]이 있다. 유딧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에게 침략당하자 적진으로 찾아가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신임을 얻고 연회 때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장군의 목을 잘라 귀환해 이스라엘을 구한 과부다. 즉 안중근의 저격은, 유딧의 칼부림을 누구도 살인으로 일컫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6년 10월 22일 [[충남]] [[홍성군]]의 홍주 생매장터 순교성지의 14처[* 조각가 고영환 토마스 作.] 봉헌 [[미사]]에서,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는 강론 중에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시복 시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래 시복 및 시성 추진 관련 업무는 해당 성인의 출신지 교구장이 하는 것이나, 안중근 의사가 태어난 [[황해도]]는 [[북한]]에 있다. 따라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이 직무를 맡을 [[주교]] 한 사람을 선출하였고, 유흥식 주교가 이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