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중근 (문단 편집) ==== [[북한]]의 평가 ==== 항일을 국시로 삼은 북한에서도 당연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1970년대에 [[김일성]]의 지시로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우생을 단장으로 임명하여 안중근 유해 발굴단을 보냈으나 실패했다. 1979년에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라는 영화도 제작되었으며, 극본은 백인준, 연출은 엄길선 감독, 안중근 역은 배우 리인문이 맡았다. 1998년 7월에 문화관광부가 국가안전기획부 등 관계기관의 검토를 받아 수입을 허가했으며, 9월 1일 밤 10시 55분에 북한 영화로는 최초로 SBS에서 방영되었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에도 다시 한 번 방영되었다. 하지만 원작에 등장하는 김일성 찬양은 당연히도 삭제되어 있어서 원래 160분짜리가 2시간으로 줄었다.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의거를 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김일성|1912년에 태어날 '임']]의 출현을 고대하는 장면 등. 어쨌든 남과 북에서 모두 존경받는 인물인 만큼, 순국한 지 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민족 교류에 기여하는 셈이다. 2009년, 북한은 신문을 통해 "안중근은 민족이 기억하는 애국 열사이며, 어쩔 수 없이 개인 테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풍운아"라 평가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2938578|#]] 그러나 [[주성하]] 기자가 [[http://nambukstory.donga.com/Search?query=%EC%95%88%EC%A4%91%EA%B7%BC&x=0&y=0|블로그에 밝힌 바로는,]] 2014년 11월 기준으로 [[북한]]에서 해당 영화가 더이상 상영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 지도부가 암살 한 번으로 민족의 영웅이 된 안중근 의사를 본받는 사람이 나올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 안중근 의사를 대놓고 띄워주는 일은 이제 없을 듯하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평하며 [[주체사상|독립을 위해서는 인민대중이 수령의 영도 아래 조직적으로 싸워나가야 한다]]라는 교훈을 남겼다는 내용을 교과서에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안중근 의사의 의거조차도 김일성의 우상화와 이로부터 이어지는 북한 정권의 정당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https://m.blog.naver.com/minjune98/221267598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