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승민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과 지명 비화 === 고교시절에는 약체인 [[공주고등학교 야구부|공주고]]를 [[하드캐리]]한 에이스로, 안승민의 컨디션과 성적에 따라 공주고의 승패가 정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고교 시절 커리어에서도 눈에 띄는 기록은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두 경기 연속 무사사구 완봉승이다. 이 외의 각종 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주며 청소년 대표에까지 뽑혔다. 잘하는 경기와 못하는 경기 사이에서의 기복이 심하고 속구에 다소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만, 186cm, 86kg의 준수한 편의 신체조건과 고교생임에도 불구하고 속구의 구속이 평속으로 140이 넘길정도로 당시 고교 투수들 중에서 최고급에 속하는 속구파였다. 훌륭한 성적도 가지고 있었기에 프로에서도 즉시 선발감으로 활용 가능하며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 시속 150km의 공을 뿌리는 투수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와 각 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프로에 와서 교정을 한 결과 전력투구를 하면 150 초반은 던질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던질 수 있는'거지 제구력같은 문제가 남아있어서 던지지 않는다고.] 그러나 투구폼에 여러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투구시 발을 끄는 버릇이 가장 잘 알려진 문제점으로, 이 외에도 부상의 원인이 되기 아주 좋은 뻣뻣한 투구폼에 선천적인 유연성도 떨어지는 편이라 부상위험이 굉장히 큰 선수로 생각되었다. 게다가 이미 부상경력도 있어서 결과적으로 스카우터들이 픽을 하는데 주저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봉황대기 무사사구 완봉승 등 호성적을 내기 이전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플루크]] 의심도 받았다. 안승민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부각되면서 [[한국프로야구/2010년/신인드래프트|2010년 드래프트]]에서는 [[두산 베어스|두산]]의 [[장민익]] 같은 의외의 선수들이 상위 라운드에 지명을 받게 되고, 안승민은 2라운드가 끝날때까지 지명받지 못했다. [[파일:external/file.dailian.co.kr/news1250489380_167661_1_m.jpg]] 드래프트를 기다리며 지명을 기다리는 안선생님.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25EC%2595%2588%25EC%258A%25B9%25EB%25AF%25BC%25EB%2593%259C%25EB%259E%2598%25ED%2594%2584%25ED%258A%25B81.jpg]] '''으, 응? 왜 안뽑아가는거지... 분명히 이쯤에서 이름이 나올텐데...''' [[파일:/image/111/2009/08/17/1250487438340_1.jpg]] 2라운드까지 자신이 지명되지 않자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 그런데 [[박명환야구TV]]에 나와서는 좀 다른 얘길 했다. 지명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고 그냥 생각이 많아서 습관적으로 저렇게 행동한 건데 언론에는 이 사진만 나갔다는 것. 자기는 2라운드 선수인데 그해 더 상위 순번 선수보다 기사가 더 많이 올라와서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바로 위쪽에는 한화로부터 1라운드 지명을 받은 [[김용주(야구선수)|김용주]]가 그를 위로하고 있다.[* [[김용주(야구선수)|김용주]]는 고교시절 북일고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끈 에이스 투수로, 봉황대기에서 21이닝동안 단 1점만을 허용하면서 북일고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분명히 1지명으로 뽑힐만한 성적을 냈었던 투수이기는 하다. 그러나 운동선수치고 작은 체격('''프로필상''' 175cm)과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구속이 빠르지 않고 경기운영능력과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완성형 투수라는 점에서 장래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았다. 무엇보다 고교시절의 투구이닝수가 너무 많아서 혹사 후유증이 걱정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무리 북일고 선수라지만 2, 3지명쯤으로 뽑을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용주가 1지명으로 올라오게 되자 또 다시 북일고 학연라인을 의심하며 분노를 터뜨렸다.] 오른편에 계신 분은 승민옹의 부친이신 안성호 씨.[* 사진을 잘 보면 김용주의 왼쪽에 역시 이름이 불리지 않아 초조해하는 [[문성현(야구선수)|문성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문성현은 안승민보다 뒷 순번인 4라운드에서 히어로즈의 지명을 받았다.] 중견수 부족에 몇년간 시달리는 바람에 2라운드 픽을 어쩔 수 없이 타자인 북일고 [[김재우(1991)|김재우]]에게 사용하고 3라운드에서도 중견수 자원인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 외야수 [[이상훈(1987)|이상훈]]을 지명하려고 했던 [[한화 이글스|한화]]는 자신들의 순서가 올 때까지 안승민이 지명되지 않은 행운에 쾌재를 부르며 바로 안승민을 지명했다.[* 그리고 이상훈은 안승민 바로 다음 차례인 4라운드에 지명된다.] 계약금 1억 원에 계약을 체결한 후, 한화가 신진급 선수들을 일본의 피닉스 교육리그에 보낼 때 1지명인 김용주와 같이 갔으며 이후 스프링캠프에도 김용주, [[김경태(1991)|김경태]]와 함께 같이 가게 된다. 여담으로 히어로즈의 [[이장석]] 구단주가 매우 탐을 내던 선수였다고 한다. 3라운드까지 안승민이 남아있다는 소식을 듣자 전화로 스카우트팀에 '반드시 안승민을 뽑으라' 지시했지만 지명회의 현장에 있던 스카우터들이 무시하고 [[김대유]]를 선택하자 분노한 이장석은 4라운드에 '''[[문성현(야구선수)|문성현]]이라도 지명하지 않으면 스카우터들을 잘라 버릴 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실제 2009년 말에 히어로즈 스카우트팀에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다. 스카우트 책임자였던 [[주성노]] 이사가 해임되었다. 또한 [[서한규]] 스카우터는 2군 작전코치로 자리를 옮겼으며 쌍방울 선수 출신의 노춘섭(現 kt wiz 운영팀장)이 스카우트 팀장으로 승진했다.][* 반대로 당시 [[김시진]] 감독은 [[김대유]]를 상당히 원했다고 한다. [[김대유]]의 아버지인 [[김종석(1964)|김종석]]과 선수시절의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부산고등학교 시절에 보여 준 것이 전혀 없던 [[김대유]]를 뽑은 것에 많은 히어로즈 팬들이 인맥드랩이라면서 반발하였다. 김대유는 지명 직전까지 전혀 거론되지 않던 투수로, 프로 입단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김대유]]는 예상대로 군 복무 후에도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하다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히어로즈를 떠났다.] 이 날의 지명 이후 안승민의 활약을 보고 느낀 게 있었는지 그 이후 [[이장석]]은 지명회의 때마다 직접 참석하고 있으며, 넥센 스카우트들은 자기들 차례가 오면 마지막으로 [[이장석]] 대표를 쳐다보고 최종 확인을 받고 난 뒤 마이크를 들고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