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도라 (문단 편집) == 역사 == 프랑크 왕국 시대 [[카롤루스 대제]]가 세운 스페인 변경령 중 하나인 우르헬 백작령이 그 시초다. 우르헬 백작 보렐 2세가 세르다냐를 받는 조건으로 안도라를 우르헬 교구에 넘겨버렸고 그 이후로 우르헬 교구의 주교가 안도라를 [[주교후|다스렸다]]. 따라서 안도라에는 물리적인 군사력이 없었는데, 우르헬 백작이 무력으로 다시 안도라를 가져갈 것이 뻔했던 상황에서 우르헬 주교는 카보(Caboet) 가에 방위와 일부 통치권을 주었다. 카보 가에서 가지고 있던 안도라의 통치권은 여러 차례의 혼인을 거쳐 프랑스 남부의 푸아 백작에게 넘어갔다. 푸아 백작과 우르헬 주교는 1278년 최종적으로 안도라의 공동 통치자가 되기로 합의하였다. 1278년 이후 우르헬 주교 쪽이 가진 통치권은 변함 없이 우르헬 주교가 유지하고 있는데, 푸아 백작 쪽의 통치권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게 된다. 푸아 백작 가스통 4세가 [[나바라 왕국]]의 여왕인 [[레오노르(나바라 왕국)|레오노르]]와 혼인하고 그 후손이 나바라의 왕가가 되어 안도라의 통치권은 나바라 국왕에게 이어진다. 나바라의 왕위는 부르봉 가문으로 이어지는데, 부르봉 가문의 나바라 국왕 엔리케 3세가 프랑스의 [[앙리 4세]]로 즉위함에 따라 프랑스-나바라 [[동군연합]]이 형성되었고, 안도라의 통치권 역시 이때 프랑스-나바라의 왕 즉 프랑스의 왕에게 부여되었다. [[프랑스 혁명]] 기간에는 한동안 프랑스 측의 안도라 대공이 배출되지 않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다시 안도라의 대공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군주제가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여전히 안도라 대공을 겸직하고 있다.[* 이는 안도라의 군주 신분은 어디까지나 안도라 법제 상의 지위이지 프랑스 법에서의 지위가 아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즉, 안도라 법률에 따라 프랑스의 통치자인 '개인'에게 안도라 군주위를 주는 것이므로 안도라에서 군주인 것이지 프랑스에서 군주인 것이 아니다. [[복수국적]]인 사람이 각각의 나라로부터 그 나라의 법률에 의거하여 국적을 부여받지 타국의 법률에 의하여 받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각국은 자국과 특정 국가와의 혹은 일반적인 다중국적을 허용할지 여부 등 간접적 영향만을 줄 수 있을 뿐, 멋대로 다른 나라의 국적을 부여할 수 없다.] 1993년에 국민 투표로 헌법을 제정하기 전까지는 [[봉건제]] 국가였다. 작은 나라라서 심각한 인권 유린이나 탄압이 없었기 때문에 낡은 제도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것. 안도라는 1년씩 번갈아가며 [[프랑스 대통령]]에게 현금 960프랑(약 14만원)을, 우르헬 주교에겐 현금 460페세타(약 3,000~4,000원)와 6개의 햄, 6개의 치즈 그리고 12마리의 닭을 보냈다. 이것이 그들의 주군에게 바치는 조공이었다. 입헌공동군주제가 된 후론 폐지. 1993년 [[유엔]]에 가입했다. 우르헬교구는 관구장의 교구(대교구)가 아닌 일반 교구라 교구장이 원칙상 '주교'이나,[* 대교구의 교구장은 '대주교'이다.] 안도라의 군주라는 특성 때문인지 현임 우르헬교구장인 [[조안엔리크 비베스 이 시실리아]] 대주교는 2003년 주교좌에 착좌한지 7년째 되는 2010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개인자격으로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다만, 역대 모든 우르헬교구장이 당연직으로 대주교로 승품된 것은 아니다. 유사한 예시로 [[유흥식]] 추기경이 추기경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