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나푸르나 (문단 편집) === 등정 역사 === 1950년에 8,000m급 고봉 역사상 최초로 등정된 산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가장 적은 사람만이 등정에 성공한 산이며, 등반에 도전한 이들을 가장 많이 죽인 산이기도 하다. 즉 14좌 중 최고로 위험한 산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4iV_FIRmU|항공 영상]]을 보면 안나프루나 산군은 북쪽은 깎아지른 수직 절벽이며 남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유독 안나푸르나 I봉만 남벽이 수직 절벽이다. '''안나푸르나의 등정 사망률은 무려 38%. 5명이 올라가면 2명은 못 내려오는 무시무시한 산이다.''' K2는 23.24%. 에베레스트는 5.7%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K2 북벽같이 진짜 위험한 코스로는 산악인들도 아예 도전을 하지 않으니 사망률만 가지고 난이도를 따지기에는 어폐가 많다. 특히 K2와의 비교를 통해 통계에서 보이는 착오를 알 수 있다. 안나푸르나는 어느정도 등산 경로가 개척되어 있고, 동계에도 등정에 성공한 등반가들이 있지만, K2는 21세기까지 인간의 동계 등정을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가 [[http://s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89|2021년에 와서야 겨우 초등을 허락했다.]] 8,000m급 중 가장 어려운 산이라기보다는 가장 위험한 산으로 불리는 것이 적절하다. 게다가 K2는 북벽을 완등한 산악가가 단 1명도 없다. K2 북벽 등정이 활성화 된다면 안나푸르나는 '''따위'''가 될 것이고, K2의 사망률이 수직상승하는 현상을 보일 것이다. 애초에 K2의 북벽은 시도조차도 된 적이 없어서 사망률 비교도 무의미하다. 극한의 환경에 도전하는 것이 전문 산악인이 하는 일이지만, '''사망이 확정적인 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모리스 에르조와 루이 라헤날이 1950년도에 최초로 등정하였으며, 1953년에 텐징 노르가이와 에드먼드 힐러리가 [[에베레스트]]에 등정하기 전까지 3년간 인류 유일의 8,000m급 등정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한국과는 악연이 좀 있는 산이다. 한국인 여성 최초 북미 최고봉 [[데날리]] 등반 및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지현옥]] 대장이 1999년 안나푸르나 등정 후 하산하겠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북면으로 하산 중에 추락해 사망하였다. 또한 인류 최초로 '탐험계의 4관왕'(true expedition grand slam)[* 8,000m급 고봉 14좌 완등 + 남극점, 북극점 도달 +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을 했다.]을 달성한 전설적인 [[박영석]] 대장과 일행이 2011년 신루트 개척 중 역시 추락하여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F-4iV_FIRmU|#]] [[엄홍길]] 대장 역시 안나푸르나 등정 과정에서 셰르파 2명과 [[지현옥]] 대장을 잃고 본인도 다리가 부러지는 등 생사의 고비를 넘긴 끝에, 1999년 다섯 번째의 도전 만에 겨우 등정에 성공할 수 있었다. 본인의 입으로 "안나푸르나가 없었으면 이듬해 칸첸중가도 없었고, 14좌 완등도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엄홍길 대장에게 있어 가장 의미있는 산이자 가장 시련을 안겼던 산이다. ([[http://uhf.or.kr/new/announce/view.php?board_id=news&board_idx=173&page=97&board_id=news&search_keyfield=&search_keyword=|출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