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규백 (문단 편집) == 생애 == [[1961년]] [[4월 29일]],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서 태어났다. [[광주서석고등학교]](4회),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평화민주당]] 당료 공채에 응시하여 합격하면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이후 [[신민주연합당]], [[민주당(1991년)|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등에서도 당료로 근무하였다. 주로 조직 계열에서 활동했는데, 새천년민주당 조직관리국장, 사무처 국장, 지방자치국장을 지냈다. 2003년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의 분당 사태 당시에는 열린우리당으로 가지 않고,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했다. 한때, [[고건]] 총리가 대선 출마를 검토할 때는 그의 참모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료로서 마지막 직책은 민주당의 조직위원장이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비례대표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비례대표 14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에는 그가 주로 활동했던 구 민주당 계열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공천이 되었다고 한다. 공천 과정은 차치하고, 의원들이 기피하던 국방위에 들어가서 맹활약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러 군데 이름을 올렸다. 한때 중랑구 을 지역 출마도 검토하였지만, 최종적으로 그가 선택한 지역은 바로 군포. 이 지역의 3선 의원인 [[김부겸]]이 대구 출마를 선언하면서 내려간 지역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19대 총선 공천 경쟁이 시작하자마자 [[이학영]]의 전략 공천으로 결정이 나 버렸다. 새로 생긴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시민사회 세력의 대부 격인 이학영을 무시할 수 없어 내린 결정일 텐데, 이 과정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낀 구 민주당 계열 인사, 이를테면 [[한광옥]]이나 [[김덕규]] 같은 사람들이 탈당하면서 계파 갈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안규백 자신은 탈당은 하지 않고 당 잔류를 선언했고, 이대로 출마는 못 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뜬금없이 [[민주통합당]]의 서울 동대문구 갑 후보로 [[전략공천]]되었다. 이 지역은 원래 경선 예정 지역이었는데, 컷오프된 후보가 이의를 제기하자 당 지도부에서 갑자기 방침을 바꿔서 그를 [[전략공천]]해 버린 것. 이때 전략공천으로 인해 경선을 해보지도 못하고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이 고용정보원장을 지낸 권재철, 그리고 훗날 서울 중구청장에 출마하는 [[서양호]]였다. 엄청 늦게 공천되어서 기반이 없었지만 꾸역꾸역 선거 운동을 한 끝에 결국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으로 초기 2차례(18대, 19대)의 기간 동안, 줄곧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해 왔다. 19대 국회 말기인 2015년 국정감사에서 공군 [[KF-X]] 개발 사업의 난맥상을 제기, 공론화한 것도 그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순수 민간인 출신으로는 국회 내에서 드문 국방통으로 평가받는다. 인품과 관련하여 신사적이고 온화하며 사람을 잘 챙기는 성격인데, 이로 인해 군 인사들과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인 출신임에도 국방위에서 우수한 실적을 낸 것도 이러한 인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2015년 7월 전문연구요원 폐지를 주장하며 '''"반발해도 3개월이면 잊어먹어. 부모가 죽어도 3개월이면 잊어먹는 겁니다. 그건 의식하지 말고 신념을 가지고 하세요."''' 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http://en.pokr.kr/meeting/19334153346/pdf|원문]] [[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5/146340874402455685143048dbb8adb5438ee9b035__mn119017__w1152__h819__f130622__Ym201605.png|#]]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일찍부터 해당 지역의 단수 공천을 받아 충분히 선거 운동 준비를 할 수 있었고, 결국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국민의당 후보가 15.8%의 표를 얻었지만, 해당 후보가 야권만이 아닌 여권의 표도 골고루 얻어 가면서 표 분산이 일어나 최종적으로 [[허용범]] 후보를 19대에 이어 두 대 연속으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제19대, 제20대 두 선거에서 약 3-4%의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했는데, 이것은 동대문구 갑 지역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기반을 가진 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대문 갑 지역에 연고가 없는 만큼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데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으며, 3선 의원으로 지역주민들의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2016년 8월 29일에는 [[추미애]] 대표가 안규백 의원을 [[더불어민주당]]의 신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추 대표가 비문재인계로 분류되는 안규백 의원을 당의 핵심 요직인 사무총장직에 앉힌 건 탕평책의 일환이라고 전해진다. 대선 종료 후인 2017년에 사무총장 직을 [[이춘석]]에게 넘겨주었다. 그 뒤 서울시당위원장에 도전해 당선되면서 서울시당위원장에 선임되었다. 2018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도전을 위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김우남]]의 뒤를 이어 최고위원에 선임되었다. 서울시당위원장과 겸직하게 되고, 서울권 선거를 총지휘하게 된다. 이 해에는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재보궐선거도 송파구 을, 노원구 병 두 지역구나 열리는 지라 서울시당위원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3월에는 자신의 옆 지역구인 [[민병두]] 의원이 [[미투 운동]]에 지목돼 사퇴 의사를 밝히자 의혹만으로 사퇴하는 것은 지역주민들에게 무책임한 행태라며 사퇴 철회 요구를 옆 지역구 국회의원 자격으로서, 서울시당위원장 자격으로서 요청하였다. 8월 18일 서울시당위원장에 다시 선출되면서 임기를 이어가게 되었다. 21대 총선에서는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단수공천을 확정받으면서 4선에 도전했다. 참고로 비례대표로 초선을 했기에 동대문구 갑에서의 도전은 3선이다. 미래통합당 허용범 후보와의 3번째 대결이었는데, 19대, 20대 때는 3% 차이의 박빙 승리로 피말리는 승부를 하였고, 이번에도 출구조사에서는 3% 가량 차이나는 경합으로 분류되었으나 개표 결과 사전투표에서 크게 앞서면서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10% 차이로 4선에 성공하였다. 최근 들어서는 전라북도 지역 신문에 안 의원의 [[전라북도지사]] 출마설이 돌았지만, 주소지를 전라북도로 옮기지 않아 불출마로 일단락. 2022년 08월 31일 BTS 병역 특례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국민개병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돈을 많이 번다고 혜택을 주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며 “BTS가 대중 예술에서 선양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대학에서 공부한 청년이나 농촌에서 농사짓는 청년, 300억불을 바라보는 방산업체에서 근무하는 청년도 다 국위선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https://www.ytn.co.kr/_cs/_ln_0134_202209011734120622_005.html|말했다.]] 위에 서술된 2015년 전문연구요원 폐지 서술과 이를 비추어보았을 때, 병역의 형평성에 대한 가치관이 확고한 듯하다. 비록 본인은 방위 출신이나, 본인의 세 아들 중 둘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였고, 3남 역시 20년 05월에 육군 병으로 입대하였다고 [[https://www.sedaily.com/NewsView/1Z59WXQJPI|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