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경 (문단 편집) == 역사 == 양눈에 착용하는 방식이 아닌 볼록렌즈 [[돋보기]] 형태로는 고대부터 존재하였다. 한국에도 [[1915년]]에 [[분황사]] [[모전석탑]]을 수리하면서 발견된 사리함 안에서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 넣은 [[분황사 모전석탑 출토 수정화주]](634년 제작 추정)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는 돋보기 혹은 불씨를 얻는데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경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유물이다. [[http://www.eyeng.com/news/?m=1&category=1201&mode=view&no=352|기사]]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눈에 착용하는 형태로 최초의 안경은 1286년 이탈리아의 [[피사]]의 살비노 다르마트(1258~1312)와 피렌체의 수도사 알레산드로 다 스피나가 발명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잘못된 설이 있는데, 12세기 중국에서 연기에 그을린 수정판으로 만들어진, "빛을 차단하는" [[선글라스]]가 등장한 것이 잘못 알려진 것. 선글라스가 존재했다면 '안경'이라는 물건의 개념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아직까지는 중국에서 최초로 안경을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다. 알베르트 망구엘은 자신이 지은 독서의 역사라는 책에서 안경을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추정 되는 사람 세 명을 언급하는 데 각각 조르다노 다 리발토, 스피나, 로저 베이컨이다. 모두 13세기~14세기의 인물들로 앞에 두 사람은 이탈리아 사람, 마지막 로저 베이컨은 잉글랜드 사람이다. 특히 로저 베이컨은 1268년 "누구든지 수정이나 유리를 통해 글자나 작은 물체를 관찰하면, 그리고 그 수정이나 유리가 둥근 것을 자른 단면이고 그 볼록면이 눈 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 글자는 훨씬 더 잘 보이고 더 크게 보일 것"이라고 안경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모양. 물론 저자 역시 확실히 누군가를 최초의 안경 발명자라고 단정하진 않고 있다. 덧붙여, 유럽 그림에 안경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352년 톰마소 다 모데나가 프로방스 지역 생 셰르 성당의 위고 추기경을 그린 초상이라고 한다. 그림에 그려진 안경은 '대갈못 안경.' ||<:>[[파일:external/historyofinformation.com/first_depiction_of_spectacles-tommaso_da_modena_1352.jpg|width=250]]||<:>[[파일:학봉김성일안경.jpg|width=400]]|| ||<:> 톰마소 다 모데나, 위고 추기경의 초상, 1352년 ||<:>[[김성일(조선)|김성일]]의 안경.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안경이다. || 광해군 6년(1614)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적 저술이라 할 수 있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안경의 전래에 대한 기록이 있다. 전래된 정확한 연도는 나와있지 않으나, "안경은 2백년 전 처음 있었던 물건"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김성일(조선)|김성일]]의 안경이 유물로 전해지고 있는데, 김성일이 사망한 것은 임진왜란 초기인 1593년이므로, 여러 정황을 종합하자면 대략 그 전인 1580년경을 전후하여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구체적으로 유입시기를 더 추적해보자면 안경이 [[조선]]에 전래된 것은 [[임진왜란]] 때로 보이는데 이익(李瀷)은 1740년경 저술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이 애체(애j)라는 안경이 장차 중국으로 전해오게 될 것이고 가정에서도 반드시 갖출 것이다’라고 썼다. ‘애체’는 조선시대 안경을 부르는 가장 친숙한 이름 중 하나였다. 18세기 북경을 오간 연행(燕行) 사절의 기록에도 안경이 수없이 언급된다.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이 쓴 ‘안경류’에는 안경을 근시안경 원시안경으로 구분하고 형태에 따라서도 구분한 글이 나온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403183?lfrom=comment|“눈 밝아지는 오묘한 물건…” 안경은 언제 조선에 왔을까]] 아무튼 17세기에 양반이나 부유층들을 중심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19세기 와서는 눈이 나쁜 서민들도 착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에는 안경다리가 없는것이 일반적이라서 보통 렌즈 양쪽에 끈을 달아 착용했다. 안경테는 고급품은 바닷거북 등껍질과 소뿔등을 썼으나 저가품은 금속이나 나무를 쓰기도 했다. 또 다른 말로는 애체(靉靆)라고도 한다. 순우리말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명ㆍ청 시기 중국 문헌에도 쓰인 걸 보면 당연히 순우리말은 아니다. 원래는 구름이 덮인 모습을 가리키는 [[의태어]]였으나, 안경이 중국에 전래될 당시 불리던 어떤 미지의 외국어 이름을 음차하는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마침 눈을 '덮는다'는 식으로 뜻이 겹친 것도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애체'의 당시 중국어 발음은 '아이다이'나 '아이나'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로 인해 후술할 페르시아어 '에이나크'의 음차로 보는 견해도 있다.] 중국에 안경을 전해준 네덜란드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라는 학설이 있다. 왜납(矮納)이라고도 했는데, 이건 안경의 [[페르시아어]]인 '에이나크(عینک, eynak)'의 음차.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60705|역사 속의 안경들]]. [[정조(조선)|정조]]가 애용했다고도 전해진다. 즉위한 지 23년째 해(1799년)부터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맞춰 썼다는 기록이 [[정조실록]]에 있다. 그래서 조선 국왕을 묘사할 때 안경 낀 임금은 십중팔구 정조다. 이 시기에는 수정을 갈아서 안경을 만들었는데, 이 가운데서 가장 유명했던 것이 [[경주시]] 남산의 수정을 갈아서 만들었던 남석 안경이다. 나름대로 편광안경, 보호경 취급도 받으면서 상당한 고급품 취급을 받았던 모양. 당시 관료들이 구하려고 했던 흔적들이 보인다. 또한 이 시기 수정 안경들 중에서는 검은 색이 들어간 안경도 가끔 발견되어서 '''조선시대판 [[선글라스]]'''가 단순히 고증 오류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되곤한다. 물론 안경 다리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정면 디자인은 상단 김성일 안경과 별로 차이가 없다. 구한말의 안경을 낀 조선인 사진을 보다 보면 유난히 안경알의 색이 짙은 것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 수정 안경이다. 조선시대의 안경에 대한 예법으로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위이어서 반드시 안경을 벗어야 했다는 거다. 이는 안경이 양반계층을 중심으로 보급되면서 그에 관련한 예절도 만들어진것으로, [[헌종(조선)|헌종]]의 치세 아래 [[이조판서]]를 지내고 있던 조병구는 눈이 매우 나빠서 평소에 안경을 끼고 생활하였는데, 헌종의 앞에서 안경을 쓰고 있다가 그를 본 헌종이 크게 진노하며 나무랐다.[* [[야사(역사)|야사]]에서는 이에 두려움으로 휩싸인 조병구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고 [[자살]]했다고 한다. 완전한 진실인지는 불명.] 일본에서 온 사신이 왕 앞에서도 안경을 벗지 않은 일이 외교 문제로 비화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까지 안경을 쓰는 사람은 학식이 뛰어날 것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다.[* [[크메르 루주]]가 [[킬링 필드]] 때 안경 낀 사람들을 '''일을 하지 않고 책만 보느라 눈이 나빠진 인민의 적'''으로 몰아서 죽였다는 얘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 이는 사회적인 이유를 보면 알수있다. 한국에서 텔레비전은 1970년대 후반에 대중화되었고, 컴퓨터가 각 가정에 보급된것은 1990년대의 일인데, 20세기 초중반에는 돈이 많지않으면 영상매체를 자주 접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눈이 혹사될 정도로 텔레비전과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안정적인 계층 정도로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당시에 평균적인 시력이 21세기에 비해 현저히 좋아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들이 적었고, 안경을 쓰는 사람들 대다수는 평소에 독서이나 공부, 서류 및 논문 작성 등으로 [[책벌레|글이나 책과 가까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기때문에 안경을 쓰면 공부잘하는 학생 내지 학력이 높은 사람, 혹은 사무직 노동자라는 인식이 박힌 것이다. [* 물론 지금에 비하면 평균시력이 좋았다는것이지 당대 사람들이라 해서 무조건 시력이 좋은것은 아니었다. 기계수리공 같은 사람은 지금과 큰 차이는 없었고, 의료여건도 현저히 열악했던 시대인 만큼 보험체계와 의료기술이 뒤 떨어져서 지금이라면 치료될 환자도 당시에는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그러다보니 똑똑해 보이려고 안경 착용을 위해서 전구를 쳐다보는 등 고의로 눈을 혹사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이 당시에 어른 앞에서 안경을 쓰면 공부 많이 했다고 뽐내는 것으로 여겨졌고, 학식 자랑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고 있으면 건방지다고 여기는 풍조도 있었다.[* 특히 남녀차별이 심했던 시절, 여자가 안경을 쓰면 남자의 경우보다 편견이 더 심했다. 현재 노년층인데 젊은 시절부터 시력이 안 좋았던 여성 중에는,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시어른에게 인사를 가면서 안경을 썼다가 무례하다는 식으로 트집 잡힌 경우가 있다. 반대로 트집 잡힐까봐 나쁜 시력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안 쓰고 갔는데,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어른들 앞에서 실수하고 곤란해진 사람도 있다. --안경을 써도 문제, 안 써도 문제--] 이러한 안경에 대한 편견은 드라마에서 세대 차이를 드러내는 장치로 등장하기도 했다. 동아시아 문화권이 안경쓰는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한국, 중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이 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안경을 많이 사용한다. 이는 높은 전자기기 사용률과 교육열이 합쳐져서 안경쓰는 사람들의 수도 크게 늘어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