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함경 (문단 편집) == 개요 == 아함부에 속하는 소승경의 총칭으로 남전(南傳)ㆍ북전(北傳)이 있다. 북방 불교에서 전하는 것은 4 아함 외에 잡장(雜藏)이 있으나 따로 세우지 않았고, 남방불교인 팔리어 대장경에는 디가 니까야(Dīgha-nikāya, 장부), 맛지마 니까야(Majjhima-nikāya, 중부), 상윳따 니까야(Sayutta-nikāya, 상응부), 앙굿따라 니까야(Aguttara-nikāya, 증지부), 쿳타카 니까야(Khuddaka-nikāya)의 5 아함이 있었다.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를 소리대로 한자로 차음하여 '아함경'이라 하였다.[* 함(含)이 상고한어로는 대충 '컴'이나 '금' 정도로 발음되었다고 추정하므로, 산스크리트어 발음 '아가마'에 좀 더 가까워진다.] 그 뜻은 '[[전승]]' 즉 [[부처]]의 말씀을 기록해 전래됐다는 것이다.[* 아함이란 말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언덕에서 머금다'가 되지만, 의미와 상관없이 한자의 음만을 빌렸으므로 한자 그대로 뜻을 새기면 안 된다.] 힌두교에도 이름이 같은 문헌이있다. 아함경은 [[후한]](後漢) 시대부터 부분적으로 번역되었다. 안세고로부터 [[148년]] 후로 몇 가지 번역이 있었으나 『잡아함경(雜阿含經)』을 비롯하여 여러 아함의 별생경이고 주요한 경전은 되지 못하였다. [[173년]] 이후는 축불삭ㆍ지루가참 등 서역승들이 대승경을 번역했으므로 한때 번역이 되지 않다가[* 다만 삼국시대 오, 위에서 잡아함경의 일부가 번역되기는 했다.] [[380년]]쯤부터 점차로 아함ㆍ비담을 공부한 학승들이 중국으로 건너 와서 다시 번역을 시작했다. * 전진 건원 20년([[384년]]) 도카륵국의 담마난제가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41권, * 동진 융안 원년([[397년]]) 승가라차ㆍ승가제화가 『중아함경』 60권을 번역. * 동진 의희 9년([[413년]]) 법현(法顯)[* 중국에서 최초로 인도로 구법을 떠난 승려로, 그의 기행문인 [[불국기]]가 오늘날까지 전한다.]이 『장아함(長阿含)』ㆍ『잡아함』의 범본(梵本)을 가지고 와서 그 해에 불타야사가 『장아함』을 외워내어, 불념이 번역. * 유송 문제(재위:465년 ~ 472년) 때에 구나발타라가 『잡아함(雜阿含)』 50권을 번역. * [[472년]]경[* 여담으로 이 해에 [[백제]]의 [[개로왕]]이 [[북위]]에 국서를 보내 [[고구려]]와 전쟁을 벌여달라고 요청했었다. 씹혔지만.] 불념이 『중아함경(中阿含經)』 59권을 가지고 와서 번역. 그리하여 4 아함경의 한문 번역이 완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