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틸라 (문단 편집) === [[갈리아]] 원정과 [[카탈라우눔 전투]]의 참패 === 451년, 아틸라는 마침내 군사를 움직였다. 그는 훈족 기병들로 구성된 자신의 주력군을 동쪽으로 파견하여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반기를 든 [[아르메니아인]]들을 지원하였으며, 아틸라 자신은 직접 게피다이족, 스키리족, 동고트족, 슈바벤족, 알레만족 등 다양한 이민족들로 구성된 혼성군을 거느린 채 당시에 서로마의 세력권이었던 오늘날의 [[독일]] 및 [[프랑스]] 지역, 즉 갈리아 일대를 침공하였다.[* 당시 아틸라가 직접 거느린 군대에 훈족 기병은 이미 아르메니아로 보냈기 때문에 그다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훈족의 세력권에 편입된 여러 민족들로부터 끌어모은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원래 중앙아시아의 기마민족들은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아틸라뿐 아니라 훗날 [[몽골 제국]]도 이런 식으로 세력권 현지인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아틸라가 거느린 군대의 수는 정확하지 않다. 많게는 10만 정도까지 추산되지만, 실제로는 3~5만 정도를 넘지 못했으리라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당시 아틸라의 행군로는 기록이 부실해서 불분명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라인 강]]을 넘어서 모젤 강을 따라 진군하며 여러 주요 도시들을 공격하여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프랑크족도 아틸라의 군세에 합류하였다. 이들은 모젤 강변의 주요 도시였던 트리에를 함락시켰으며, 그해 4월에는 갈리아 지방에서 전통 있는 주요 도시인 메스를 공격하여 무참히 파괴하였다. 훈족의 갈리아 침공으로 인하여 서로마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훈족과 아틸라가 떨치던 악명은 극에 달하였고, 그를 '신의 징벌'이라 불렀다는 전승도 여기서 비롯하였다. 그해 6월, 아틸라의 군대는 마침내 오를레앙에 이르렀다. 그때 마침 서로마의 군사령관이었던 명장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서고트족의 왕인 테오도리크 1세와 손을 잡고는 갈리아 내에 있는 약소한 여러 부족을 포섭해 연합군을 편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아에티우스 또한 군대를 거느리고 오를레앙으로 진격하여 아틸라의 앞을 막아섰다. 각기 여러 이민족을 거느린 아틸라와 아에티우스의 군대는 오를레앙의 카탈루니아 평원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는 후에 [[카탈라우눔 전투]]라 불렸다. 아틸라는 싸움에 앞서 관례에 따라 주술사들에게 소의 창자와 뼈로 점을 치게 하였는데, 주술사들은 이 싸움에서 훈족은 끔찍한 피해를 입을 것이나 그 대가로 적장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아틸라는 그 적장이 아에티우스가 분명하다고 믿었다. 한편 [[요르다네스]]의 기록에 따르면, 아틸라는 전투를 개시하기 직전에 자신의 군대 앞에서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며, 로마의 군대는 지금껏 자신들이 물리쳐왔던 적들처럼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 호언장담하였다. 당시 아틸라가 아래처럼 말했다고 한다. >내가 적에게 첫 창을 던지리라. 이 아틸라가 싸우는 전장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이는 오로지 죽은 자들뿐이다. 아틸라의 진영이 먼저 서로마 군단의 진영을 공격하며 싸움이 시작되었고, 이 격렬한 전투에서 과연 서로마 군단의 지휘관이 전사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틸라의 예상과는 달리, 아에티우스가 아니라 서고트 왕인 테오도리크였다. 아틸라는 처음의 목표와는 달리 전투의 유리한 고지였던 언덕을 점령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서로마 군단과 서고트 전사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 결국 훈족의 공세는 실패로 돌아갔다. 아틸라는 도랑과 수레로 방벽을 형성해서 그 뒤로 진영을 숨길 수밖에 없었으며, 훈족 군대는 아에티우스에게 포위당하였다. 아틸라는 그동안 숱한 싸움을 치르면서 이와 같은 대패를 당해본 일이 없었기에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전승에 따르면, 이 싸움에서 패배를 직감하자 아틸라는 자신의 진영이 함락될 시에 스스로 불에 뛰어들어 자결하기 위해 장작더미까지 쌓아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에티우스는 싸움에서 거의 다 이긴 상황에서 어째서인지 아틸라가 무사히 후퇴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다만 요르다네스의 서술에 따르면, 아에티우스는 훈족의 세력이 갑자기 붕괴된다면 이민족 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져서 서로마의 국방에 악영향을 가져올 것을 염두에 두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결국은 다른 이민족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필요악인 훈족의 소멸을 막고자 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 덕분에 아틸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목숨을 건져서 돌아갈 수 있었다.[* 아틸라조차도 아에티우스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고 물러난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고 한다. 아틸라는 이를 함정이라 생각하여 서고트족이 물러난 후에도 한동안 진을 거두지 않으며 방어선을 유지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