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틸라 (문단 편집) === [[유스타 그라타 호노리아|호노리아]]의 청혼 === 당시 서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누이 호노리아는 라벤나의 별궁에서 시종인 에우게네스와 통정하여 임신하였을 뿐 아니라, 에우게네스를 황제로 추대하려는 반역을 꾀하였다. 결국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에우게네스는 처형당했고, 호노리아 자신은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로 보내져 사실상 유폐 생활을 하였다.[* 이는 호노리아의 어머니였던 [[갈라 플라키디아]]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딸의 목숨을 보존시키는 동시에 서로마 정계에서 영향력을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서였다.] 궁지에 몰린 호노리아는 450년, [[환관]]인 [[히아신스]]를 통하여 금반지를 아틸라에게 보내서 청혼하였다. 이와 같은 제안은 아틸라에게도 매우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비록 아틸라가 동로마로부터 금을 뜯어가며 세를 과시하긴 했지만, 사실 동로마의 국력은 여전히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니었다. 더욱이 호노리아가 아틸라에게 청혼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로마에서는 [[테오도시우스 2세]]가 낙마사고로 급사하였고, 그보다 더욱 강경한 [[마르키아누스]]가 동로마 황제가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훈족은 동로마에서 더이상 금을 뜯어내기가 곤란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아틸라는 동로마와는 달리 그 세력이 크게 쇠퇴한 서로마를 상대로는 원하는 만큼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틸라는 이미 아내들을 여러 명 거느렸으나,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호노리아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서로마 제국 영토의 절반을 [[지참금]]으로 요구하였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살아있던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는 기절초풍하였다. 그는 행여라도 아틸라가 또다시 동로마를 공격할 것을 염려하여 호노리아와 히아신스를 서로마로 돌려 보내버렸다. 한편 누이의 매국행위에 격분하여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아틸라와 내통한 히아신스를 고문하고는 죽여버렸으며, 아틸라의 요구를 거절하고 훈족과 맞서 싸우겠다는 결의를 드러냈다.[* 이후 호노리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설마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훗날 발렌티아누스가 시해당했을 당시에 함께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