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틸라 (문단 편집) === 초기 일생 === 아틸라는 훈족의 왕이었던 루아(Ruga)의 둘째 조카였다. 루아에게는 문주크(Mundzuk)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문주크에게는 [[블레다]](Bleda)와 아틸라 등의 두 아들이 있었다. 435년 11월, 루아가 사망하자 그의 맏조카이자 아틸라의 형이었던 블레다가 뒤를 이어 훈족의 왕이 되었다. 아틸라가 그의 형인 블레다와 함께 공동으로 훈족을 통치하였다거나 혹은 아틸라가 이때에도 정치상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훗날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친 아틸라의 위상을 높이 봐서 나온 설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의 아틸라는 그저 형의 휘하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가진 강력한 2인자 정도로 간주해야 옳을 것이며, 당시 훈족의 왕이었던 블레다야말로 훈족의 최고 권력자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실 역사 속의 유명한 군주들이 권좌에 오르기 전에도 실권을 쥐고 있었으리란 가설은 후세 사람들에게는 꽤나 매력이 있어서인지 [[람세스 2세]]도 파라오가 되기 전 아버지와 공동으로 통치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었다고 한다.] 438년경, 블레다와 아틸라 형제는 도나우 강변의 마르구스 외곽에서 동로마 사절단과 회담을 가졌는데, 이것이 아틸라가 역사의 기록에 첫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재미있게도 블레다와 아틸라는 동로마 측 사절단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생각이었는지 말을 탄채로 회담을 하였고, 동로마 사절단도 이에 질세라 마찬가지로 말 위에 앉은채 블레다 형제를 맞이했다. 양측은 협상 끝에 그동안 동로마가 훈족에게 해마다 지급하던 황금의 양을 350파운드에서 700파운드로 인상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조약을 채결하였다. 이 조약에는 그 외에도 도나우강 유역에 훈족과 동로마 양측의 안전을 보장하는 자유시장을 개설하고 동로마 측이 더이상 훈족 도망자들을 받아주지 않기로 하는 등 훈족에게 유리한 내용이 많았다. 이후 440년 겨울, 블레다와 아틸라는 마르구스의 주교가 훈족 왕족들의 무덤을 도굴하고 다닌다고 주장하며 자유시장을 공격하여 그곳에 있던 동로마 상인들을 살해하고 그 인근에 위치한 비미나키움을 점령했다. 441년에는 마르구스의 주교가 훈족에게 항복하여 그 땅이 점령되었고, 442년에는 도나우강 인근의 요충지였던 나이수스마저 훈족의 수중에 떨어졌다. 훈족이 마르구스와 나이수스를 점령할 당시에 아틸라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은 구석이 있다. 전투가 한창인 와중에도 아틸라는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인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자신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훈족에서 동로마로 망명해온 몇몇 귀족들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해왔다. 동로마 측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아틸라는 동로마의 몇몇 요새를 공격하여 빼앗았다. 어쩌면 아틸라는 블레다가 동로마와 싸우는 와중에 나름의 이득을 취하려다가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결국 블레다와 합세해버린 듯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