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틸라 (문단 편집) === 죽음과 사후 === 요르다네스의 기록에 따르면, 헝가리 지역으로 돌아온 아틸라는 동로마 측에 공물을 요구하면서 그 속주를 공격할 것처럼 위협을 가하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452~53년에 걸친 겨울, 서고트족을 공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은 아틸라의 실제 동선이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중구난방인지라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신빙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453년 봄, 아틸라는 오늘날 헝가리의 티소 강에 위치한 자신의 목조 궁전에서 일디코(Ildico)[* 정확한 정체는 미상이다. 부르군트 출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딱히 근거는 없다.]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였다.[* 아틸라는 이미 그 이전에도 수차례 결혼하여 많은 아내들을 두었다고 한다. 보통 이런 결혼은 부족과 선린우호와 연합을 위해 하는 정치적인 경우가 많고 일디코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날 밤에 아틸라는 갑작스럽고도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였다. 요르다네스의 기록에 따르면, 아틸라는 신부 일디코와 동침하던 중, 엎드린 자세로 동맥이 터지는 바람에 코피가 쏟아져나와 질식사했다고 한다. 그는 죽어가면서 피를 많이 흘렸으나 상처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아틸라가 신부와 첫날밤을 지낸 다음 날 아침, 시종들은 아틸라가 일어나지 않자 그를 살피기 위해 침실에 들어갔다가 이미 피를 흥건하게 흘린 채 죽은 아틸라와 겁에 질린 채 비탄에 잠긴 일디코를 발견하였다. 아틸라의 진정한 사인은 여전히 의문이다. 혹자는 심장마비나 뇌출혈로 인한 [[복상사]]로 보기도 한다.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마르켈리누스는 아틸라가 신부에게 살해당했다고 보았으나 그 주장에 별다른 근거는 없다. 그리고 아틸라의 최후의 순간 함께 있었던 일디코는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다. 아틸라의 장례식은 들판 한가운데에 비단으로 쳐놓은 대형 천막에서 거행되었다. 엄선된 뛰어난 기수들이 죽은 왕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천막 주변에서 말을 달리는 의식을 치렀고, 사람들은 아틸라의 정복전쟁과 그 위업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아틸라의 부하들은 임금의 죽음을 눈물이 아닌 전사의 피로써 기리기 위해, 자신들의 얼굴에 상처를 내거나 머리털을 잘랐다.[* 지도자가 죽었을 때에 장례식에서 부하들이 스스로 얼굴에 상처를 내서 피를 내는 관습은 유라시아의 다른 유목민족들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다,] 훈족 사람들은 아틸라의 시신을 금으로 만든 관에 안치했는데, 관 속에는 망자의 신분에 걸맞은 보석과 말갖춤(마구) 등 값비싼 보물들이 부장되었다. 이들은 아틸라가 묻힌 곳을 비밀로 하기 위하여 관을 한밤중에 매장하였으며, 관을 매장한 이들도 모두 죽였다고 한다. 아틸라가 사망한 후에 훈족의 위세는 급격히 무너졌다. 아틸라의 뒤를 이어 훈족의 왕이 된 장남 엘라크가 자신의 두 아우들인 뎅기지크 및 에르나크와 내분을 일으켰다. 엘라크는 아버지인 아틸라가 그랬던 것처럼 단독으로 훈족의 왕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의 아우들은 각기 자신만의 세력 지분을 나눠 가지기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454년에 뎅기지크와 에르나크는 형과의 세력다툼에서 패하여 훈족의 땅에서 쫓겨났다. 이후 454~55년 사이에 아틸라와 동맹을 맺었었던 게피다이의 왕 아르다리크가 동로마의 지원을 등에 업고 훈족의 지배에 반기를 들었다. 엘라크는 네다오 강 전투에서 아르다리크에게 패하고 전사하였으며, 훈족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엘라크를 무찌루고 훈족의 본거지를 차지한 게피다이 족 또한 동고트에게 패배하면서 남쪽으로 밀려나 쇠퇴하게 되었다.] 한편 도나우 강 하류로 밀려났던 뎅기지크는 동로마와 2년에 걸친 전쟁을 벌였다가 469년에 전사하였고, 그 두개골은 전리품이 되어 콘스탄티노플에 전시되었다. 막내아들 에르나크는 동로마의 속방이 되는 조건으로, 오늘날 루마니아 동쪽의 [[도브루자]]를 얻고는 그곳에 정착하였는데 이후의 행적은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동로마 제국의 사절단으로서 아틸라를 직접 알현했던 프리스쿠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틸라는 아들들에게 무심했지만 에르나크에게만은 한없이 자애로웠다고 하는데, 일찍이 그는 '아틸라 일가는 몰락하겠지만 막내아들에 의해 가계가 이어질 것이다.' 하는 점괘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점괘가 맞았다. 허무한 죽음을 맞음으로서 훈족은 급격히 몰락했고 직접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지는 못했지만, 아틸라 사후 20년 만에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