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테네 (문단 편집) === 로마 시대 === >'''"그대들은 죽어 마땅한 죄를 되풀이해서 짓는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때마다 눈부신 업적을 남긴 조상들 덕분에 용서받는 걸로도 유명하군."''' >---- >{{{#!wiki style="text-align: left;" '''[[율리우스 카이사르]]''', 항복해 죄를 비는 아테네인들에게.}}} 아테네에 [[과두정]]을 강요한 안티파트로스가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쓰러지고, 데메트리오스가 아테네를 정복한다. 그는 그리스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리스의 자유를 주러 왔다고 자처하고 아테네의 민주정을 복권시켰지만, 시민의 60%인 무산 계급 시민 전체가 잘려나간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회복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아테네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가운데서는 상당한 힘을 발휘했지만, 해군은 기대할 만한 것이 아니었으며 민주주의는 공고하지 못했고 과두정 세력과 각축을 벌였다. 이후, 아테네는 [[피드나 전투]]를 거쳐 [[로마 제국]]의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고, 폰투스 왕 [[미트리다테스 6세]]의 편을 들었다가 [[술라]]에게 항복했다. 기원전 88년, 술라의 강요로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완전히 포기한다. 이후 아테네는 또 지는 편인 [[폼페이우스]]의 편을 들었다가 [[파르살루스 회전]]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항복하고 위의 빈정거림을 듣기도.[* 사실 이 시대에는 아테네뿐 아니라 그리스 전체가 이 모양이었다. 그리스 전체가 로마의 손에 들어가면서 겪게 된 사회 변화로 인해 인재들이 유출되었기에 고대 그리스는 이전과 같은 역량을 낼 수 없었다.] 이렇게 아테네는 [[로마 제국]]의 지방 도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아카데미|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을 중심으로 학술과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는 대규모 신시가지가 세워지는 등 그럭저럭 번창하였다. 사도 바울로도 선교 여행 중에 방문한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쇠락과 함께 아테네 역시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아카데미아를 폐쇄할 시점에는 이미 아카데미아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중세시대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헤파이스토스 신전 등이 정교회 성당으로 바뀌고 [[동로마 제국]]의 항구도시로 나름대로 이름을 날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