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케나톤 (문단 편집) == 기타 == 세계 최초의 일신교를 만들었다는 점과 그의 치세가 [[출애굽기]]의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와 가깝다는 점에서, [[유대교]]의 기원(나아가 [[기독교]]의 기원)을 그에게서 찾는 시각도 있다. 사실 이집트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될 무렵부터 나오기 시작한 뿌리 깊은 가설.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는 이런 관점을 차용하여 [[람세스 2세]]의 친구이자 신하였던 히브리인 [[모세]]가, 지하에 숨어든 아톤 신도들의 영향을 받아 결국 람세스와 대적하는 것으로 그렸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다. 출애굽 전기설에 따르면 투트모세 3세 혹은 아멘호테프 2세 때 출애굽이 시작되었다고들 하니... 이쪽은 워낙 출애굽기의 역사적 해석에 대한 설이 많으므로 [[출애굽기]] 문서를 참조하자. 그 외에도 아케나톤이 이러한 유일신 신앙을 내세운 것은 [[성경]]의 인물 [[요셉(창세기)|요셉]]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근본주의/기독교|근본주의 기독교]]계에서 하는 주장이다. 이 설을 지지하는 측에선 아케나톤의 외할아버지 "유야"[* 아멘호테프 3세의 장인으로 [[왕가의 계곡]] KV47 무덤에 부인 투야와 매장된 만큼 권력과 지위가 높았다.]가 요셉과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을 한다. 유야는 당시 파라오에 이어 서열 2위였으며, 거의 파라오에 버금가는 권력이 있었다.[* 이집트 역사에 유야 외에 유야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 없다.] 또한 파라오도 아니었으면서 왕가의 계곡에 시신이 안장되었다. 유야와 요셉이 동일 인물이라는 근거는 이러한 유야의 독특한 위치 외에, 유야의 [[미라]]가 팔을 가슴 위에 교차하는 이집트 방식과 달리 [[셈족]]의 그것처럼 턱 밑에 손을 두고 있는 포즈며, 이집트의 관료가 [[턱수염]]을 기르는 것이 금기였지만[* 오직 파라오만이 진짜 턱수염을 길렀다.] 유야는 멀쩡히 기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야=요셉 설은 역사로 인정받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와 모순되는 점이 많다. 시신이 왕가의 계곡에 있다거나,[*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우선 [[창세기]] 종반부에는 요셉이 죽기 전 자손들에게 나중에 때가 되면 자신의 유해를 가지고 나가라고 유언했다. 또 [[출애굽기]] 중반에 보면 [[모세]]가 출애굽할 때 무덤에서 요셉의 유해를 가지고 나갔으며 [[여호수아]] 종반부에는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요셉의 유해를 그 곳에 안장했다고 나온다.] 무엇보다도 요셉 이후의 세월이라는 것도 있어서...사실 아케나톤은 아멘호테프 3세의 차남으로 그의 형 투트모세 왕자가 요셉이라는 설도 있기도 하다. 또한 아텐 신앙이 [[아브라함계 종교]]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 자체도 비판을 받고 있다. 신뢰성도 낮은 편에 속하고 특히나 해석 부분에 실수한 부분이 많은 데다가 끼워 맞추기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아케나톤과 유대교와의 관계를 증명하려면 모세가 아케나톤의 사제이고 유대인들이 그 시기에 그곳에 있었고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런 증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상태이다. 아케나톤이 수도로 정했던 아마르나의 유적지에서는 기록 보관소 같은 유적들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점토판에 기록된 다양한 종류의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문서들 중 일부는 아케나톤의 아버지 아멘호테프 3세 치세의 문서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키프로스, 미케네, 바빌로니아, 미탄니 등 다양한 곳에서 보낸 외교 문서들도 있어 중요한 기록들이다. 아멘호테프 3세와 아케나톤은 이 지역들과 혼인 동맹을 맺거나 교역을 통해 외교 관계를 수립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집트의 [[누비아]] 광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잘 나지 않는 [[금]]을 채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서 중 [[바빌론]]에서 보낸 문서들 중 일부에는 받은 금을 녹여봤더니 받기로 한 양의 1/4 정도밖에 안되더라는 내용도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offin-visage-akhenaten.jpg|height=3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77dfa35c06ee456788d68451c8a9e0a5.jpg|height=300]]}}} || |||| '''{{{#A0522D 아케나톤의 황금관}}}''' |||| 보통 아케나톤의 부장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아케나톤의 황금 관'''이 보존되어있다. 사실 아케나톤의 것이라고 정확한 판정이 나온 것은 아니나 일단 그 양식과 화려함이 [[파라오]]의 것임은 확실하고, 아케나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KV55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아 학계에서는 아케나톤의 관이라고 거의 확실시하고 있다.[* 특히 황금관 안쪽의 카르투슈까지 싹싹 긁어내진 것으로 보아 더욱 아케나톤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도굴꾼이었으면 그냥 관 자체를 털어가 녹여버렸지, 굳이 이름까지 번거롭게 파낸 다음 방치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투탕카멘]]의 관처럼 완벽하게 보존된 것은 아니다. 아케나톤 사후 사제들이 그를 [[기록말살형]]에 처하며 그의 무덤을 파헤쳤고 이때 그의 관이 심각하게 훼손당했다. 관의 얼굴 부분은 오른 눈썹 주위를 제외하면 아예 날아갔으며, 관 전체가 아닌 관뚜껑만이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