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카바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아카바 요르단.jpg|width=640]] 아카바 교회 유적 [[파일:요르단 아카바 1.jpg]] [[이슬람 제국]]기 도시 유적 [[성경]]에 엘라스로 등장할 만큼 유서 깊은 도시로, [[로마 제국]] 시대에는 아엘라로 불렸으며 제9군단이 주둔하였다. (후일 [[예루살렘]]으로 이동) 서기 300년 경에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처음부터 교회 목적의 건물이 세워졌다. 기존 교회들은 다신교 신전을 개조한 것이었다. 다만 이는 363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복구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아카바에는 지금도 5천여 기독교도들이 살고 있다. 전체 인구는 15만여 명이다. [[이슬람 정복]] 후 아랍인들은 기존 성벽 밖에 새 도시 아일라 (آيلا)를 건설하였다. [[메카]] 순례객들과 [[인도양]]을 오가는 상인들이 거쳐가던 도시는 [[천일야화]]에도 몇 차례 등장한다. 1116년 [[예루살렘 왕국]]의 군주 [[보두앵 1세]]가 도시를 점령하고 헬림 성채를 건설하였다. 나중에 [[르노 드 샤티용]]이 이곳을 차지하여 메카 성지순례객들을 상대로 해적질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살라딘의 동생 알 아딜의 반격으로 개발살난다. 1187년 [[살라흐 앗 딘]]이 아카바를 점령하였다. [[파일:아카바 요르단 2.jpg|width=700]] 아카바 성채. [[십자군]] ~ 오스만 시대에 사용되었다. 1332년에는 [[맘루크 왕조]]의 술탄 [[앗 나시르 무함마드]]가 [[카라크(도시)|카라크]]에 주둔하던 아들 아흐마드와 아부 바크르, 아나크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후 함께 메카 순례에 나서려 하였으나 변심하여 그들을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한편 [[십자군 전쟁]] 이후 방치되던 아카바 성채는 16세기 [[홍해]]에 출몰하던 [[포르투갈]]에 대적하려 노력하던 맘루크 술탄 깐수 알 구리에 의해 재건되었고, 이어진 [[오스만 제국]]기에 수비대가 주둔하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로렌스와 아랍 연합군이 가장 먼저 점령하는 도시도 여기로, 1917년 아랍 봉기군은 오스만 수비대를 습격하고 아카바를 장악하며 시리아 진격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후 [[헤자즈 왕국]]에 포함되었는데, 헤자즈 왕국이 1925년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멸망하고 수년이 지나 [[1965년]] 요르단과의 국경 조약으로 아카바 지역은 구 헤자즈 왕국령 중 유일하게 [[하심 왕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022년 6월 27일에 아카바 항구에서 유독가스[* 그중 [[염소(원소)|염소]]가 함유된 가스다.]가 유출돼 10명이 사망하고 251명이 부상당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683053?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