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티 (문단 편집) ==== 비극의 서막 ==== 아이티는 [[1492년]] 12월 5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훗날 [[카리브 해]]로 불리게 되는 서부 [[대서양]]의 [[히스파니올라 섬]]을 발견한 이후 그 [[막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원래 히스파니올라 섬에는 토착민인 [[타이노인]]이 50만 명가량 살았으나 섬의 원주민이던 타이노인과 아라와크인 등 카리브 원주민들이 [[스페인인]]들이 묻혀 온 각종 [[전염병]][* [[천연두]], [[수두]], [[홍역]] 심지어 그냥 [[감기]] 등이었는데 이 중 천연두의 살상력이 가장 화끈했다. 지금은 평범해 보이는 감기도 원주민들은 면역력이 0에 수렴해 대거 [[폐렴]]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번져 죽어나갔다. 이런 현상은 [[19세기]]에 [[영국계 미국인]]들이 [[서부개척시대|서부개척]]을 하던 시기도 마찬가지라 [[백인]] [[선교사]]나 개척자들은 병을 옮기며 돌아다니고 원주민들은 천연두와 홍역으로 대거 쓰러져 나갔다. 그리고 완전히 저항력을 잃은 잔존 원주민 부족들을 [[사막]]이나 [[산]] 한가운데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쫓아냈다.]으로 인해 99%가 몰살되었고 남은 원주민들도 학살당했다.[* 그래도 카리브 원주민이 아주 [[DNA]]가 사라지진 않아서 일부 혼혈은 살아남았다.] 이에 일할 사람조차 없어지자 [[스페인인]]들은 [[서아프리카]]에의 [[포르투갈인]] [[노예상인|노예상]]들에게서 [[포르투갈령 기니|기니비사우]], [[포르투갈령 앙골라|앙골라]], [[상투메프린시페]] 출신의 [[흑인]] [[노예]]들을 사들여 대거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납치해와 노예로 부렸는데, 이들이 현재 [[아이티인]]들의 선조이다. 물론 아이티에 원래 살고 있던 토착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오늘날에는 현존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혼혈 타이노는 극소수 남아있다. [[17세기]] 말 [[프랑스 왕국|프랑스]]가 [[레이스베이크 조약]]에 따라 스페인으로부터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반부를 [[할양]]받아 [[생도맹그]](Saint-Domingue)라는 이름의 [[식민지]]로 지배하게 되었다. 동반부는 여전히 스페인 도독령 산토도밍고(Santo Domingo)로, 같은 말이지만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 구분되는 지역 명칭을 갖게 된다. 이 구분이 지금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구분으로 이어져 오게 된다. 또한, [[도미니카인]]과 [[아이티인]]과의 차이도 매우 커지게 되었다. 프랑스는 새로 차지한 생도맹그가 [[사탕수수]] 및 [[커피]] 등의 재배에 적합함을 알아차리고 대규모 [[플랜테이션]]를 구축하고는 [[서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데려와 노예로 착취했다. [[7년 전쟁]]으로 [[캐나다]]와 [[루이지애나]]의 광대한 식민지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영국]]과 스페인에게 내주어 이후 아메리카에 있는 식민지가 아이티, [[마르티니크]], [[과들루프]]를 비롯한 소앤틸리스 제도의 일부 조그만 섬들과 [[프랑스령 기아나|기아나]] 정도밖에 안 되어 아이티를 무척이나 아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안정적으로 보일 만큼 [[가난]]한 [[파탄국가]]로 전락한 지금을 생각해 보면 당혹스럽지만, [[아이티 혁명]] 이전만 하더라도 [[사탕수수]]와 커피 플랜테이션 [[농업]]이 번성했던 아이티는 당대 최대의 [[설탕]], 커피 생산지였다. [[1780년대]]까지 당시 [[유럽]]에서 소비되는 설탕의 약 40%, 커피는 약 60%가 바로 생도맹그 산이었다. 유럽 국가가 아메리카에서 경영하는 단일 식민지 중 가장 부유한 곳으로, [[프랑스]] 국부의 4분의 1을 조성했다. 한때는 무려 70퍼센트를 차지한 통계도 있다. 아이티의 인구도 대단했는데, 노예만 70만 명에 이르러 오늘날 도미니카 공화국 지역의 7배에 달했다. 반면 [[18세기]] 당시 도미니카 공화국은 평방킬로미터당 인구밀도가 5명 남짓했을 정도로 인구가 희박했으며 주민들은 [[소]]떼를 쳐서 [[소가죽]]을 수출하는 곳이었다. 물론 아이티 인구의 90%는 그냥 노예일 뿐이었고 부는 몽땅 프랑스로 돌아갔으며 돈줄은 [[프랑스인]] 이주민들의 손에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