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렐리아누스 (문단 편집) === 장군으로서의 경력 === 아우렐리아누스는 기병대 지휘관 [[아우레올루스]]의 휘하에서 여러 전공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참여한 기병대는 제국 서방과 동방을 오가며 게르만족과 [[사산조 페르시아]]에 맞서 싸웠고 제국 곳곳에서 횡행하는 반역자들 토벌에 앞장섰다. 그러던 268년 아우레올루스가 스스로를 갈리아 제국 황제 [[포스투무스]]의 대리인으로 자처하며 갈리에누스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갈리에누스는 토벌에 나서 밀라노 근방의 폰티롤로 누에보에서 격전 끝에 아우레올루스의 군대를 격파하고 아우레올루스를 밀라노에 가둬놓고 포위 공격했다. 그런데 갈리에누스는 전투를 지휘하던 중 근위대장 [[아우렐리우스 헤라클리아누스]]에게 피살되었다. [[아우렐리우스 빅토르]]는 아우렐리아누스가 갈리에누스 암살에 가담했다고 밝혔지만, 그가 정말로 암살에 동의한 게 맞는지, 암살에 얼마만큼 관여했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새 황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치하에서 빠르게 승진했다. 그는 달마티아 기병대의 지휘권을 맡았고 뒤이어 마기스테르 에퀴툼(Magister equitum)에 임명되어 황제 다음가는 로마군의 지휘관이 되었다. 269년 발칸 반도를 침략한 고트족을 토벌하러 출정한 클라우디우스는 나이수스에서 기병대를 매복한 후 고트족을 유인해 방심한 그들을 습격했다. 이때 아우렐리아누스는 기병대 지휘관으로서 맹활약했고 고트족 5만 명이 이 전투에서 살해되거나 포로가 되어 노예 시장에 팔렸다. 살아남은 고트족들은 마케도니아로 탈출했지만 로마 기병대의 끈질긴 추격과 식량 부족으로 고통 받아 여러 전사들이 굶어죽자 하에무스 산맥으로 숨었다. 이에 클라우디우스는 하에무스 산맥을 포위했고, 고트족은 로마군에게 포위된 채 추운 겨울을 보내는 동안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린 끝에 대다수가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