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렐리아누스 (문단 편집) === 암살 === 이렇듯 군사와 내정면에서 가공할 업적을 남긴 아우렐리아누스는 [[군인 황제 시대]]에 출현한 로마 황제들 중 가장 유능한 황제였다. 하지만 그는 예전의 티베리우스가 연상될 정도로 본인과 타인 모두에게 지나치게 엄격했다. 따라서 그는 집권 이후, 군대의 엄격한 규율을 민간에도 그대로 적용했고, 군인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민간인보다 책임을 엄하게 묻도록 했다. 따라서 그의 치세동안 범법자가 된 이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법 그대로 처벌받았다. 여기에는 황제의 가족, 측근 혹은 친구라고 해도 예외가 없었다. 그 결과, 상관의 아내와 불륜을 맺었던 한 부하는 양 팔과 양 다리가 두 그루의 나무에 묶인 후 나무들이 잡아당겨지면서 온 몸이 찢겨지는 처벌을 받았고, 병사들도 범죄를 저지르면 가중처벌을 받았다. 당연한 말인데, 그는 티베리우스처럼 공공도덕심을 무척 강조한 까닭에, [[엄벌주의|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익이나 질서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사형 집행인들은 수많은 이들을 처형했고 감옥은 미어터졌으며, 원로원은 눈 앞에서 동료들이 비리, 불륜 등으로 기소 후 처형되는 장면에 벌벌 떨었다. 이렇듯 매사를 엄격하게 처리하던 아우렐리아누스는 275년에 갈리아에서 발발한 반란을 진압하고 빈델리키아[* 오늘날 [[독일]] 님부]에서 침략한 [[이민족]]을 격멸했다. 이후 과거 발레리아누스 황제를 포로로 잡은 [[사산 왕조]]페르시아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동방으로 출진했다. 이때 그는 자신의 비서들 중 한 명인 에로스와 마찰을 빚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우렐리아누스는 에로스에게 거칠게 화를 내며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공포에 질린 에로스는 사형 집행서를 위조하여 여러 고위 관료들의 이름을 적은 뒤 이 문서를 관료들에게 보여줬다. 아우렐리아누스가 매사를 엄격하게 집행한다는 걸 잘 알고 있던 노타리우스 무카포르를 비롯한 여러 관료들은 공포에 질렸고, 이내 황제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275년 9월, 에로스와 노타리우스 등 관료들은 트라키아의 카이노프루리움[* 지금의 [[터키]] 촐루]에서 아우렐리아누스를 암살했다. 향년 61살이었다. 나중에 에로스가 문서를 위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암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후회했고 일부 가담자들은 자살했다. 나머지도 모두 붙잡혀 에로스는 산 채로 찢기는 [[거열형]]을 받았고, 다른 가담자들도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