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랑제브 (문단 편집) === 계승 전쟁 === '''아우랑제브는 제 아버지를 쫓아내고 제위에 올랐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무굴 제국에는 [[티무르 제국]]의 전통을 따라 장자 계승의 원칙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 황제가 바뀔 때마다 후계자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 계승 전쟁을 벌였고, 여기서 이긴 사람이 다음 황제로 즉위하는 식이었다. 계승 방식이 이런 식이었으니 제대로 평화로운 제위 계승이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이때 당시 샤 자한에게는 다라 시코, 샤 슈자, 아우랑제브, 무라드 바크쉬 황자 등 총 4명의 유력한 황위 계승 후보가 있었다. 개중 가장 유력한 계승자는 다라 시코 황자였다. [[악바르]]의 재림이라 할 정도로 온화한 기질의 군주였고 꽤나 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좋아해 [[힌두교]] 신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반대로 아우랑제브는 친무슬림이었고 호전적이었으며 강력한 비타협주의를 추구해 [[무슬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총 4명의 후계자들이 있었지만 이 두 명이 가장 세력이 컸기 때문에 사실상 아우랑제브와 다라 시코 황자가 제위를 놓고 격돌한다. 1657년에 샤 자한이 몸져눕자 후계자들 사이의 쌓여있던 갈등이 폭발한다. 샤 자한은 미리 계승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다라 시코 황자를 다음 황제로 지정한 상태였지만 그런 것 따위는 무굴 제국에서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다. 아우랑제브는 샤 자한이 병석에 누운 것을 기회로 삼아 황위를 찬탈하기로 결심한다. 그 뿐만 아니라 샤 슈자, 무라드 바크쉬 등 나머지 2명의 황자들도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고, 이들은 모두 샤 자한과 다라 시코 황자가 있는[* 다라 시코 황자는 이미 다음 황제로 낙점된 상태였기 때문에 아버지 곁에서 정무를 보좌하고 있었다.] [[아그라]]로 진격했다. 샤 슈자 황자는 본거지였던 [[벵골]] 지방에서 황제를 자칭하고 아그라로 진격했지만 샤 자한의 진압군에 의해 패배해 달아났다. 아우랑제브는 데칸 일대에서 돈을 있는대로 끌어모아 금력을 쌓은 뒤 바로 아그라로 진군했다. 한편 [[구자라트]]가 홈그라운드였던 무라드 바크쉬 황자는 중간에 아우랑제브와 타협을 맺고 서로 힘을 합쳤다.[* 무라드 바크쉬가 아우랑제브와 맺은 협약의 내용은 대충 제국의 3분의 1은 무라드 바크쉬 황자에게, 나머지 3분의 2는 아우랑제브가 갖는 것이었다.] 아우랑제브와 무라드 바크쉬의 연합군은 둘의 연합을 미처 전해듣지 못했던 진압군을 1658년 4월에 손쉽게 깨부쉈다. 샤 자한이 보낸 진압군을 무너뜨린 아우랑제브는 거칠 것이 없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이젠 다라 시코 황자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아우랑제브를 제압하러 나왔지만, 애초에 유한 성격이었던 다라 시코가 전쟁 분야에서만큼은 타고난 아우랑제브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고 1658년 6월 사무가르 전투에서 다라 시코는 대패하고야 만다.[* 다라 시코는 뛰어난 문학적 업적과 다르게 군사적 재능은 꽝이었는데 샤 자한의 칸다하르 원정 중 다라 시코가 이끈 3차 칸다하르 공방전은 7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고도 실패했다. 1658년 5월 29일 사무가르 평원의 전투에서 잘 준비된 아우랑제브의 군대와 다르게 다라 시코의 군대는 오합지졸이었고, 다라 시코가 몰던 [[코끼리]]가 부상당해서 말로 갈아타자 부하들이 다라 시코가 전사한 줄 알고 도망쳤다.] 사무가르 전투의 패배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다라 시코 황자는 아그라로 돌아가 아버지 샤 자한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가족들만을 챙겨 [[델리]]로 도망갔다. 이후 아우랑제브는 아그라로 무혈 입성했다. 샤 자한은 [[아그라 요새]]에서 버텼지만 아우랑제브가 물 공급을 끊어버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항복했고, 결국 1658년 7월에 황위에서 강제로 폐위당했다. 아우랑제브는 아그라 정복 직후 무라드의 뒤통수를 치고 그를 체포한 다음 죽여버렸고, 샤 슈자는 저 멀리 [[버마]] 지역으로 내쫓아버렸으며 델리로 도망쳤던 가장 강력했던 경쟁자 다라 시코는 제국의 북서 국경까지 쫒아가 끝끝내 처단했다.[* 다라 시코 황자가 도망가던 중 휘하 장군이 그를 배신했고, 다라 시코는 1659년 8월에 목이 잘렸다. 시체는 조상 [[후마윤]]의 묘 근처에 버려졌고 목은 감금 중이던 샤 자한에게 보내졌다. 다라 시코의 장남 술라이만 시코는 지속적으로 [[마약]]을 투여해 중독사시켰다.] 이렇게 모든 경쟁자를 제거한 아우랑제브는 1658년 공식으로 대관식을 치르고 제6대 황제로 즉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