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아오바(중순양함) (문단 편집) ==== 태평양 전쟁의 흐름이 바뀌다 ==== || 연합군 측 피해 || 일본군 측 피해 || ||<(> * 중순양함 캔버라, 아스토리아, 퀸시, 빈센스 침몰 * 중순양함 시카고 손상 * 구축함 랄프 탤벗, 패터슨 손상 * 해전에서 전사자 총 1,023명 * 구축함 자비스 전장 이탈 중 공습으로 침몰, 전사자 247명 ||<(> * 중순양함 초카이, 아오바, 키누가사 손상 * 해전에서 전사자 총 58명 * 중순양함 카코 전장 이탈 중 잠수함에 의해 침몰, 전사자 68명 || 미 해군과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특히 북부부대에는 203mm 포 9문을 탑재한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아스토리아급 중순양함]] 아스토리아, 빈센스, 퀸시 3척이 포진하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 203mm 포 6문밖에 없었던 아오바와 제 6전대 중순양함들에게 일방적으로 박살나버렸다. 오스트레일리아군의 중순양함 캔버라도 가라앉았다. 게다가 미 해군의 [[노스햄프턴급 중순양함]] 4번함 시카고는 남부부대의 지휘를 맡았으면서도 경계와 전투에 모두 실패하고, 일본군에게 얻어터진 데다 북부부대에 경보도 보내지 않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시카고의 함장이었던 하워드 보데는 사보섬 해전의 비공개 보고서에서 자신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린 것을 안 후 1943년 4월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시카고 역시 수리를 마치고 전선에 복귀했으나 명예를 회복하지도 못하고 1943년 1월 29일에 렌델 섬 해전에서 침몰했다. 사실 제 8함대의 전력은 농담으로라도 대단치 않았다. 제 8함대에서 그나마 최신형 군함은 기함 [[초카이(중순양함)|초카이]] 하나 뿐이고, 제 6전대를 제외한 나머지는 없는 게 나은 녀석들이었다. 기함과 무전기도 안 통하고 성능도 형편없는 데다 승조원들의 기량도 영 좋지 않은 텐류, 유바리, 유나기는 함대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이런 데도 일방적으로 패배했으니 미군으로서는 낭패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짜로 치욕적인 사태는 그게 아니었다. 과달카날에는 [[프랭크 플레처]] 제독이 지휘하는 61임무부대라는 막강한 함대가 있었다. 여기에는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1번함 [[노스캐롤라이나(전함)|노스캐롤라이나]]도 있었고, 항공모함 새러토가와 와스프도 있었으며, 그 유명한 전설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도 있었다. 농담이 아니고, 제 8함대 따위는 한 주먹으로 박살낼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싸우지도 않고 퇴각해버렸다. 야간에 항공모함 3척을 위험한 해역에 방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한 플레처 제독이 함대를 뒤로 뺀 것이다. 이 사태에 해병대는 "주력 함대가 아군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비난을 퍼부었고, 해전 이후 캘리 제독은 플레처에게 겁쟁이라고 욕했다. 이 문단 맨 위의 대사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플레처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에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위에서 봤듯이 과달카날을 지키던 중순양함들은 제 8함대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당했고, 혼자 싸우던 퀸시는 아오바에게 박살났다. 게다가 미 항모들은 아직 야간작전능력이 없었다. 불을 켜고 함재기를 이함시킬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혹시나 존재할 일본 잠수함에게 발각될 위험 또한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보섬 해전에서 미 해군이 보여준 추태와 대전 중 격침된 미 항모의 대부분이 무력화 후 산소어뢰로 격침되었음을 생각해봤을 때, 항모 3척이 날아가는 대참사가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시기에는 아직 일본 육군 항공대가 미 해군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던 시기였고, 불과 하루 전과 해전 당일인 8일까지 라바울 기지의 항공대에 괴달카날 주변의 미 함대와 전투기들이 공격을 받았다. 그 미드웨이에서 항공전과 뇌격으로 격침된 요크타운을 지휘한 플레처인만큼 사실상 미 해군의 유일한 전력이 사라지면 태평양의 제해권이 비록 일시적이더라도 어떻게 될 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 [[가공전기]]를 방불케하는 패배에 대해 미 해군은 '''역사상 최악의 해전'''이라는 평가를 내렸고, 일본군은 미군의 공습을 우려하여 철수하지만 제8함대 사령관 미카와 중장은 미군 수송선단까지 격파하지 않고 철수했다는 이유로 일본군 수뇌부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패배로 미군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빼앗겼고, 미 해병대는 과달카날에 고립되어 물자부족에 시달렸으며, 밤마다 찾아오는 일본 함대의 포격에 고통받게 되었다. 이후 미국과 일본의 함대결전이자 전쟁의 전환점인 [[과달카날 전역]]이 시작됨으로써, 아오바는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바꾼 군함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 첨언하자면 비행기가 전쟁에 쓰인 이래, 미군이 제공권을 빼앗긴 건 이 해전이 유일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