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오바(중순양함) (문단 편집) === [[베허호 사건]] === 1944년 2월 말에, 남서방면 함대사령관 다카츠 시로 대장은 16전대에 인도양 방면의 연합군 선박을 습격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아시가라가 일본으로 돌아갔으므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16전대는 7전대 소속의 중순양함 2척을 지원받게 된다. 16전대는 2월 27일에 기함 아오바, 경순양함 키누와 [[오오이]], 구축함 5척, 그리고 7전대 소속인 [[토네급 중순양함]] 토네와 치쿠마를 이끌고 출격하지만 토네의 삽질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3월 15일에 인도네시아의 [[http://en.wikipedia.org/wiki/Tanjung_Priok|탄중 프리옥]] 항구에 입항함으로서 작전은 종결된다. 이후 토네는 작전 과정에서 생포한 영국 상선 베허호의 포로 일부를 아오바에 넘겼으며, 아오바에 보내진 포로들은 포로수용소로 보내져서 강제노동에 종사하다가 전후에 석방된다. 이들의 숫자는 참고문헌에 따라 다른데, 15명이란 설도 있고 36명이란 설도 있다. 임무가 끝났으므로 토네는 16전대의 관할에서 벗어났으며, 3월 18일 밤에 토네 승조원들은 남은 포로들의 목을 벴다. 포로 살해 현장에는 토네의 함장 [[http://ja.wikipedia.org/wiki/%E9%BB%9B%E6%B2%BB%E5%A4%AB|마유즈미 하루오]]도 동석했다. 살해된 포로의 숫자도 명백하지 않은데, 65명이란 설부터 80명까지 다양하다. 처음부터 베허호에서 구조된 선원의 수가 104명이란 설도 있고 108명이란 설도 있다. 이것이 통칭 베허호 사건으로, 당시 16전대 사령관 사콘조 나오마사는 전후 재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했다. 그러나 사콘조가 학살책임자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며, 증인들의 증언도 서로 엇갈렸다. 확실한 것은 중순양함 토네에서 3월 18일 밤에 포로들을 학살한 후 시체를 바다에 버렸고, 그 짓을 한 자는 토네 승조원들이며 마유즈미 하루오도 동석했다는 것이다. 특히 마유즈미 하루오는 베허호를 습격할 때 성조기를 토네에 게양해서 국제법을 어겼고, 토네 승조원들의 포로 학대를 방조했으며, 학살이 벌어질 때 토네의 함상에서 모든 것을 지켜봤다. 사형을 면할 수 없는 중범죄다. 그러나 포로학대와 학살을 저지른 토네 승조원들은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고 석방되었으며, 토네 함장 마유즈미 하루오도 '소극적 가담자'라는 이유로 노동형 7년이라는 가벼운 벌을 받았고, 고작 4년만 복역하고 석방된 후 잘 먹고 잘 살다가 1992년에 편안하게 죽었다. --어디가 소극적 가담자야?-- 자세한 내용은 [[베허호 사건]]을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