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시가라(중순양함) (문단 편집) ==== 시마 함대 시절 ==== 아시가라가 떠나고 아오바가 기함이 된 후, 16전대는 구르기 시작했다. 우선 인도양 통상파괴전에 투입되었는데, 아시가라가 없어서 빈 자리를 메우려고 7전대의 [[토네급 중순양함]] 토네와 치쿠마가 잠시 배속되었다. 그러나 토네는 작전을 모조리 말아먹더니, 작전이 끝나고 16전대의 지휘에서 벗어난 지 사흘 후에 [[베허호 사건]]을 일으켜 베허호 선원 80명을 학살했다. 16전대가 맡은 베허호 승조원들은 모두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16전대장 사콘조 나오마사는 이 일로 전후에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다. 토네 함장 마유즈미 하루오와 토네 승조원들이 학살을 저질렀음은 명백했지만, 마유즈미 하루오는 4년만 형을 살고 석방되었고 토네 승조원들은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사콘조 나오마사만 사형당했다. 학살 명령을 내린 남서방면 함대사령관 다카츠 시로가 전쟁 중에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누가 책임자인지는 논란이 있으나, 실제로 손에 피를 묻힌 살인마들이 처벌받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관련 내용은 [[베허호 사건]] 문서 참조. 토네 대신 아시가라가 작전에 참가했다면 16전대장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이후 16전대는 혼 작전에 투입되었고,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시마 함대에 배속되었다. 아시가라도 시마 함대 소속으로 해전에 참가했으므로 16전대와 아시가라의 재회가 이뤄질 수도 있었겠지만, 16전대는 시마 함대 본대와 합류하지 않고 수송선들을 호위하며 레이테 섬 오르목 만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것이 1차 다호작전이며, 16전대는 기함 아오바가 대파되어 회항하고 경순양함 키누와 구축함 우라나미가 피격되어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는데도 끝까지 전진한 끝에, 레이테 섬 돌입임무를 성공하고 병력을 양륙시켰지만 돌아오던 중 미군의 공격으로 괴멸되고 만다. 레이테 만 해전에 참가한 부대 중 오자와 함대와 더불어 임무에 성공한 유이한 부대라는 이름을 남긴 채로. 그러나 시마 함대 본대는 전황에 기여하지 못했다. 시마 함대와 함께 하기로 했던 니시무라 함대가 미군 구식 전함들의 공격으로 전멸했기 때문이다. [[후소급 전함]] 2척을 거느린 니시무라 함대가 전멸할 정도라면 중순양함 2척이 주력인 시마 함대로서는 레이테 섬 돌입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시마 함대는 후퇴했지만, 니시무라 함대의 중순양함 모가미가 불타는 것을 보고 침몰했다고 착각했기에 모가미가 아직도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모가미와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진 후에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시마 함대의 기함인 묘코급 2번함 [[나치(중순양함)|나치]]가 모가미를 들이받았고, 모가미는 큰 피해를 입고 도망가다가 결국 침몰했으며 나치 역시 대파되었다. 이후 나치는 16전대 기함이었던 아오바, 구리다 함대 소속 중순양함 쿠마노와 함께 수리에 전념했으나 미군의 공습이 심해지자 아오바는 쿠마노와 함께 일본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나치는 피해가 너무 심했기에 같이 가지 못했고 미군의 공습으로 침몰했으며, 쿠마노 역시 미군 잠수함에게 어뢰를 맞고 함수가 날아가서 탈출에 실패했다. 이후 쿠마노는 미군에게 공격받아 격침되었지만, 아오바는 대파되어 6노트밖에 못 내는데도 미군의 공격을 모두 피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후 아시가라는 시마 함대의 새 기함이 된다. 첨언하자면 묘코급 1번함 묘코는 레이테 만 해전으로 대파되어 수리를 위해 일본으로 가다가 잠수함의 어뢰에 맞고 탈출에 실패한 후 싱가포르에 주저앉았고, 4번함 하구로는 동남아에 남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