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무르표범 (문단 편집) === 일제강점기 이전 === >"그런데 표범은 어디서 잡힌 건가요?" >"표범이 아니야, 암호랑이지." >"맞아, 맞아, 범 마누라야. 누런 몸에 검은 꽃무늬가 점점이 있었지." >"동물원 기록을 보면 수컷 표범이라고 되어 있던데요?" >"수컷이 아니고 암컷 호랑이라니까요. 아주 예쁜 암컷이었어요." >방 안이 떠들썩해졌다. 함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옛날에 호랑이와 표범이 부부라는 말이 있었어요. 시골에서는 아직도 표범이 호랑이의 암컷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있나 봅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표범과 호랑이가 부부라니······. 이 이야기는 둘째치고, 대체 어디에서 잡은 것일까. >---- >-'''한국의 마지막 표범''' p. 54~56 과거부터 한반도에서 [[표범]]은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범'으로 불려졌고, 민간에서는 표범과 호랑이를 같은 종으로 여기며 표범을 암컷 호랑이로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비슷하게 고대 [[그리스]]에서는 표범과 사자를 같은 종으로 여기며 사자와 표범이 짝을 짓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범' 또는 '호랑이' 기록의 절반은 표범일 가능성이 있다. 호랑이는 '줄범' 또는 '참호랑이', 표범은 '알락범(매화범)' 또는 '개호랑이'로 구분했다. 다만 지식층이나 기록물에서는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파일:external/www.dailies.kr/1046_671_2036.jpg|height=450]]|| [[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에 줄무늬 [[호랑이]]와 꽃무늬 표범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 시절에도 대표적인 맹수이자 사냥감이었다는 이야기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는 문표가 [[동예]]의 특산품이었다는 언급이 있으며, 신라 직관지를 보면 표범 꼬리가 복식으로 쓰인다. || [[파일:채제공 초상.jpg|width=100%]] || [[파일:흥선대원군(이하응) 초상.jpg|width=100%]] || || [[채제공]] 초상 || [[흥선대원군]] 초상 || 호랑이의 가죽인 [[호피]]는 두껍고 거칠어서 명확한 쓰임새 없이 덮개나 깔개 정도로나 사용되었으나 표범의 가죽인 표피는 무늬가 아름답고 부드러워서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품목이었는데, 이렇기 때문에 19세기 초에 집필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표피의 값은 호피의 값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조선의 생태환경사 p. 42] 진짜 가죽은 워낙 사치품이다 보니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다. 범 가죽은 그 무늬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잡귀를 쫓아버리는 신통력까지 지녔다고 믿어 혼례 때 신부가 타는 꽃가마의 지붕 덮개나 집안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꽃무늬 표범 가죽을 많이 그린 것은 줄무늬보다는 꽃무늬 문양이 아름답고 장식성이 높기 때문이다. >豹頭骨燒灰淋汁, 沐頭, 去頭風屑. >표범의 머리뼈를 태운 재를 즙을 내고, 그 즙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의 풍설(風屑)이 없어진다. >---- >-[[https://mediclassics.kr/books/58/volume/1#content_108|의방합부 권1]](意方合部 卷之一) >急狂, 虎豹眼精, 五六介呑下, 乾則水沈, 呑下則佳 >급작스런 발광에는 호랑이나 표범의 눈알을 5-6개 씹어 먹는다. 말라 있으면 물을 적셔 먹으면 좋다. >---- >-[[https://mediclassics.kr/books/58/volume/2#content_936|의방합부 권2]](意方合部 卷之二) >眩暈, 豹髓食之, 尤好. 又防風八戔, 水煎服. >어지러움에는 표범 골수를 먹으면 더욱 좋다. 또 방풍 8돈을 물에 끓여 먹는다. >---- >-[[https://mediclassics.kr/books/71/volume/1#content_207|주촌신방 필사본]](舟村新方 筆寫本) 표범의 신체 부위 또한 여러 약효가 있는 것으로 한의학에서 취급되었으며, 이는 과거에 저술된 한의학 서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파일:external/pds.dailypharm.com/166654_1.jpg|width=400]] [[까치]]와 표범이 그려진 민화. [[파일:월하송림호족도.jpg|width=100%]] 월하송림호족도 표범은 [[민화]]에서도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내었다. 호랑이나 표범을 그리면서도 그 무늬를 표범의 꽃무늬와 호랑이의 줄무늬와 섞어 표현하거나 꽃무늬를 한 표범과 줄무늬를 한 호랑이가 같은 그림 안에서 등장하는 등, 과거에는 표범과 호랑이를 동일한 동물로 여긴 흔적들을 살펴 볼 수 있으나 오늘날 민화의 표범들은 단순한 호랑이로 오인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표범으로는 『우수리표범』과 『한국표범』의 2종이 있다. 『우수리표범』은 주로 북한에 서식하며 만주, 시베리아 등지에 사는 표범과 같은 종류이며 그 몸집도 『한국표범』보다 크다. >---- >1925년경, 필자의 엽우(獵友)가 경남 거창 지방에 꿩사냥을 갔다가 우연히 잡은 표범은 그 몸집이 불과 12, 3관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 털가죽의 미려함이 과연 절품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물론 동물은 시절에 따라서 털가죽의 우열이 심하다. 엽우가 그 표범을 잡은 때가 늦가을이었으니 시기로도 가장 미려할 철이었으나 적갈색 바탕에 흑환이 규칙적으로 선명하게 놓였었고 복부는 백설 같았다. 회황색 바탕에 고르지 않고 선명하지 않은 흑점이 놓인 『우수리표범』이나 황갈색 바탕에 너무 빽빽하게 흑점이 놓인 『남방표범』의 털가죽은 도저히 우리나라 표범의 털가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남한에 있어서도 흔히 겨울철 적설기 중에나 봄철에 잡은 표범가죽은 회황색에 가까우며 흑점이 고르지 못하고 선명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 >'''한국야생동물기'''(수렵비화) 이상오(1959)[*표범(豹)_1._습성_및_생태 [[https://blog.naver.com/gaia1989/220818049001]]] 수렵가 이상오[* 시인 이상화의 동생이다.]는 아무르표범을 우수리표범과 한국표범의 2아종으로 분류했으나 [[시베리아호랑이]]와 한국호랑이의 차이처럼 같은 아종의 지역 차이 또는 계절 차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런던동물학회'(ZSL)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진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한양 주변의 표범 출몰과 관련한 다양한 사료를 연구한 결과 구한말 한양 성곽 내에 표범의 먹이가 될 수 있는 떠돌이 개가 돌아다니고, 버려진 집과 함께 외곽의 울창한 숲 등이 은신처가 됐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표범이 오지 산촌은 물론 한양처럼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도 먹이와 낮에 숨을 곳이 있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한 인간이 지배하는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https://m.yna.co.kr/view/AKR20211116107700009?section=international/al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