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마테라스 (문단 편집) == 성별 논쟁 == 오늘날 아마테라스는 [[여신]]의 이미지로 고정되었지만, 아마테라스가 여신이라고 확고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에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림에서 아마테라스를 동자(어린 [[소년]])의 형상으로 그린 경우가 있었으므로, 아마테라스를 [[여신]]으로 여기는 것이 완전히 보편적이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라는 신명만으로는 남신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일본의 역사학자 사토 히로오(佐藤弘夫)는 저서 《아마테라스의 변모: 중세 신불 교섭사의 관점》[* 원제: 《アマテラスの変貌 中世神仏交渉史の視座》, (2000, 法藏館)]에서, 에도 시대까지만 해도 아마테라스는 동자로 이미지된 사례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아마테라스를 우호 동자(雨宝童子)의 형상으로 받든 것이다. 또한 [[1093년|간지(寛治) 4년]](1093)에 [[이세 신궁]]의 아마테라스에게 남성용 복장을 바쳤다는 기록도 있고, 에도 시대에도 남성용 복장을 이세 신궁의 내궁에 마쳤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근대화 이전의 옛 일본에서 아마테라스를 '외모가 뛰어난 미남'으로 묘사했다는 기록이나 유물들이 있다. 심지어 가마쿠라 시대에 쓰인 《일본서기》의 주석서인 《석일본기》에서도 그렇다. 때문에 아마테라스가 여신으로 [[모에화]]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지만, 그렇게 보기도 어려운게 기기신화의 원전인 《[[고사기]]》나 《[[일본서기]]》는 아마테라스의 탄생 장면에서 각각 '천조대어신'(天祖大御神), '일신'(日神)이라고 했다. 그런데 탄생 장면에서 아마테라스가 정확히 [[여신]]인지 아닌지는 명시하지 않았으나, 《[[일본서기]]》에서는 탄생 장면에 관해 일서(一書)에서 '일신'(日神)에 대해 '아마테라스 오카미', '오히루메무치'(大日孁貴) 등이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쓰인 '영'(孁)자는 '영'(靈)자에서 여(女)를 추가하여 '여성신' 혹은 '여성 무당'을 나타낸 글자이며, 그 독음인 '메' 또한 '여'(女)의 독음이므로 사료를 연속적으로 읽는다면 여신임이 분명하다. 혹자는 이를 본문이 아닌 '일서'의 기록이라고 하여 가치를 낮추어 보지만, 이후 [[스사노오]]가 지상의 공물을 바치는 장면과 천손강림의 장면에서 정본에서도 일서의 신명으로 나타나는 '아마테라스 오카미'가 쓰일 뿐만 아니라, 천손강림 장면의 정본에서도 '오히루메노 미코토'(大日孁尊)가 신명으로 등장하므로 '일서'를 비정통적인 기록만으로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일본서기》의 편찬 과정에서 여러 판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정본과 이본이 완전히 구분된 것이 아니라, 다중적으로 얽혀 있었으며 상충하는 내용이 아닌 이상 서로 보완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마테라스가 숨어서 태양빛이 사라지는 이유 또한 아마테라스가 베를 짜던 중 스사노오에게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하므로, 직분에서도 동아시아 세계에서 여성의 역할로 규정되었던 방직을 아마테라스가 담당했다. 《[[고사기]]》에서 아마테라스가 이자나기의 왼쪽 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점과 《[[일본서기]]》 일서에서도 [[이자나기]]가 왼손에 백동경을 들었을 때 아마테라스가 태어났다고 하는 점에 대해 왼쪽은 음양의 양, 남성적인 것과 연결되는 방향이란 점이라고 하여 남성신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오른쪽 눈에서 태어난 [[츠쿠요미]]가 여신이 되어야 함에도 이에 대해서는 아마테라스가 여신이라는 것보다도 확증이 없다.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오]]와 천계의 강가에서 만날 때 남장을 했다는 점도 근거가 되지만, 그 과정을 '머리를 틀어 상투머리로 하고 치맛자락을 잡아매어 바지로 하였다.'고 했으므로 임시로 남장한 것으로 보는 설이 우세하다. 다만 아마테라스 오카미 이외의 태양신으로서 《이즈모 국 풍토기》의 사타노 오카미, 천손강림 장면에서(《일본서기》에서는 일서로 처리) 등장하는 사루타히코노 오카미 등의 남성신도 있었고, 《일본서기》의 일서에 '아마테라스를 불러낼 때 쓰인 거울'로 나타난 이세대신 등 사물신도 있었다. 그보다 이전 시점의 기록인 《수서》 <왜국전>에서는 왜왕이 '하늘을 형으로, 태양을 남동생으로' 한다고 하기도 기록했다. 따라서 관찬 사서와는 달리 민간에서는 남성/중성 태양신이 계속 섬겨졌을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아마테라스와 혼합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필자들이 아마테라스를 어떤 [[성별]]로 상상했든, 최소한 11세기 헤이안 시대로부터 19세기 에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아마테라스를 [[소년]]의 형상으로 이미지한 사람들이 많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확고하게 [[여신]]의 이미지로 굳어진 것은 근대화 이후부터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