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리안 (문단 편집) === 아리안 4 === [[파일:15_February_2003_last_Ariane_4_launch.jpg|width=70%]] ||<-10> [[파일:external/www.esa.int/Ariane_4_special_large.jpg|width=100%]] || || ||<-2> 아리안 44LP ||<-2> 아리안 40 ||<-2> 아리안 42P ||<-2> 아리안 44P ||<-2> 아리안 42L || || ||<-10> 58.72m || 높이 || ||<-10> 3.8m[* 부스터 제외] || 직경 || ||<-2> 420,000kg ||<-2> 240,000kg ||<-2> 320,000kg ||<-2> 350,000kg ||<-2> 360,000kg || 무게 || ||<-2> 3,800kg ||<-2> 2,000kg ||<-2> 2,700kg ||<-2> 3,100kg ||<-2> 3,300kg || 페이로드([[GTO#s-5]]) || 아리안 1~3의 후속작으로 아리안 3에서 잘 써 먹었던 부스터를 적극 채용하여, 아리안 4는 가장 기본형인 아리안 40 외에도, 위 그림에는 나오지 않는 아리안 44L 형까지 포함하여 총 5개나 되는 변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아리안 4 변형들의 이름 뒤에 붙은 것은 부스터의 갯수와 종류를 뜻하는 것으로, 액체 연료 부스터는 L을, 고체 연료 부스터는 P를 붙여 구분 지었다, 예를 들어 아리안 4(2P)는 아리안 40에 2개의 고체 부스터를 붙인 것이고, 아리안 4(4LP)은 아리안 40에 2개의 액체 연료 부스터와 2개의 고체 연료 부스터를 붙였다는 것을 뜻하는 것. 아리안 4의 상업적 성공의 주요한 원인으론 발사체의 안정성과 운이 있었는데, 아리안 4는 아리안 3이 퇴역하기 직전인 1988년 44LP 버젼으로 처음 발사되어 이후 2003년 아리안 44L 버젼의 발사를 마지막으로 퇴역할 때 까지 '''15년 동안 116번을 날아 올랐고, 3번 실패했다'''. 또, 당시 나사가 [[우주 왕복선]] 개발 과정의 잇다른 잡음, 비싼 발사 가격, 챌린저의 실패로 미국의 민간, 타국 대상 상업 발사 시장이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였고, 그나마 있던 델타와 아틀라스 발사체의 페이로드들도 대개 미 정부의 GPS를 싣는데 쓰인데다가, 우주 발사체계의 2인자였던 소련은 [[소련 해체|아예 망해버린 상태]]여서, 가격도 싼 편이고 성능도 그럭저럭 준수한 아리안 4는 자연스레 이목을 끌 수 밖에 없었고, 상업적으로도 좋은 실적을 올렸다. 그 결과 1995~1997년 '''단 3년만에 무려 32번을 발사했고 전체 발사체 시장의 50%가량을 점유하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지금 비슷하게 상업 발사 시장의 패권을 쥐고 있는 [[스페이스X]]의 [[팰컨 9]]과 비교했을 때 숫자는 매우 적을지라도 국제우주정거장 임무도, [[이리듐 계획]]이나 [[스타링크]] 등 저궤도 통신위성 계획 또한 거의 없는 상태에서 거의 [[정지궤도]] 통신위성만으로[* 300km+ 선의 LEO 궤도는 아리안 1~4부터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다가 아리안 5의 ISS 보급 미션 들어서 처음으로 시도, 성공했다...가 지금은 보급 프로젝트를 폐지했다. [[ATV(동음이의어)#무인 우주 화물선|ATV]] 항목 참조] 이러한 수치를 기록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게다가 듀얼 페이로드 기능으로 중,대형 위성들을 한번에 2개 이상씩 쏴 올릴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위성|우리별 1,2호]]와 [[무궁화 위성|무궁화 3호]]도 아리안 4를 통해 쏴 올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