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가동산 (문단 편집) === 아가동산의 시작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amennews.com/149-2-1239.jpg|width=100%]]}}} || || '''1996년 당시 아가동산의 정문 입구. 사건 취재를 위해 언론사 차량이 정차돼 있다.''' || * MBC 보도: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2703_19466.html|아가동산 설립과정]] 김기순은 1982년 [[경기도]] [[이천시|이천군]][* 현재의 [[이천시]]. 사건이 알려진 1996년 3월에 시로 승격됐다. 아가동산은 웬만한 이천 주민들에게도 '''안 좋은 쪽'''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참고로 사건 이후에는 네이쳐팜으로 이름이 바뀐 채 농장만 남아 있다. 아가동산의 영리성 사업체인 [[신나라레코드]] 소유의 농장이다. [[http://dmaps.kr/mvhs|다음 로드뷰]]. 인근에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딱히 주변에 정류소 이름으로 쓸 만한 시설이 없는 관계로 정류소 이름으로 '아가동산'을 사용 중이다. [[이천 버스 28-4]]가 이 앞으로 지나간다.] 대월면 대대리, 도리리 일대의 땅 4천 평 남짓을 구입해 '아가농장'이라는 것을 세웠고 신도들을 모아 아가동산을 세웠다. 이때 주현교회의 해산으로 갈 곳이 없어진 이교부의 신도들을 그대로 인수하며 덩치를 불려 나갔다. 이런 설립 과정에서 김기순은 멀쩡히 살아 있는 이교부의 영혼을 자기가 계승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자신이 이교부의 진짜 후계자라고 자처하였다. 이러한 행각은 당연히 이교부의 원한을 사게 되었고 김기순과 이교부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훗날 이교부는 아가동산 사건 재판 이후 김기순이 투옥되자 피해자들을 위하는 척하며 아가동산 신도들을 전부 인수해 아가동산을 와해시키는 것으로 김기순에게 복수했다. 굳이 따지자면 빼앗긴 자기 신도들을 되찾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김기순은 이 일을 두고 '갈 곳 없는 신도들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고 떡 장사, 어묵 장사, 음반 장사 등으로 땅을 샀다.'고 주장했다. 특히 1982년에는 첫 수익사업체 '신나라레코드물류'를 세워 초기에는 트럭으로 다른 음반점에 카세트 등 음반을 팔다가 1984년 [[서울]] 종로3가에 자체 매장을 처음 연 후 특유의 가격파괴 전략을 세워 광속으로 음반도매업계를 장악했다. 또한 1992년에는 킹레코드[* 현 신나라뮤직. 박성배가 세운 동명의 음반사와 다르다.]를 설립하고 같은 해엔 하나레코드(대전), 1993년에는 명반레코드(인천) 등을 세우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