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쑹추위 (문단 편집) == 2016년 선거 이후 == 한동안 [[정치]]를 떠나 있다가(입법원 개원일인 2월 1일에도 별다른 언급 없이 쉬었다고 한다. 물론 쑹추위는 입법위원이 아니다.) [[2016년]] [[2월 15일]], [[2016년 가오슝 지진]]의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위령제에 참석하였다. [[http://udn.com/news/story/1/1502949-%E8%A6%AA%E6%B0%91%E9%BB%A8%E4%B8%BB%E5%B8%AD%E5%AE%8B%E6%A5%9A%E7%91%9C%E7%A5%AD%E6%8B%9C%E7%BD%B9%E9%9B%A3%E8%80%85|기사]] 3월 9일 차이잉원 차기 총통과 만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10/0200000000AKR20160310082100089.HTML?from=search|1시간 이상 대화를 가졌다.]] 이를 두고 양안대화에 적극적이고, 중국 정부당국과도 다수의 회담 경험이 있었던 쑹추위를 해협교류기금회[* 약칭 해기회. 대만이 중국과의 양안 대화를 위해 1990년대 초 설립한 반관반민 성격의 재단. [[마잉주]] 정부 시절의 대3통 실현, [[ECFA]] 등에 관한 협상도 담당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대한적십자사]]에 해당한다. 남북 [[적십자]] 회담이 남북 정부간 회담으로 처리되니까. 애당초 해협회 - 해기회 양안회담이 남북적십자회담에서 협상방식을 따 왔다.] 이사장으로 기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8월 31일 차이잉원 정부는 해기회 회장에 톈훙마오(田弘茂) 전 외교부장을 기용했다. 이전부터 차이잉원 총통이 쑹추위를 내정하려 했으나, 본인이 고령 등의 이유를 내세워 끝내 사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월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차이잉원 총통이 쑹추위를 대만 대표로 파견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중국이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어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 중국이 내세운 명분은 "대만측의 대표는 경제 담당 관료만을 인정하는 것이 그동안 APEC에서의 관례"지만, 실상은 차이잉원 정부가 중국의 [[92공식]] 인정 요구를 거부하는 데 따른 불만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과 협조적이었던 전임 마잉주 정부는 APEC 대표로 [[롄잔]], [[샤오완창]] 전 부총통을 보냈고, 중국은 이를 수용한 바 있었다.] 이미 중국 정부 지도층과도 수차례 회담을 가졌던 친중파 쑹추위의 파견조차 거부할 정도로, 중국이 차이잉원 정부의 양안 정책에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 [[2016년]] [[10월 6일]] 공식적으로 [[차이잉원]] 총통이 쑹추위를 특사로 지명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0/06/0200000000AKR20161006158500009.HTML|기사]] 중국의 반응은 여전히 탐탁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APEC]] 정상회담에 대만 특사 자격으로 참가하기는 했는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식적으로 1분밖에 대화를 하지 못해(비공식 대화는 10분 정도) 논란이 되기도 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5/0200000000AKR20161125141100009.HTML|기사]] [[2017년]] APEC 정상회의 때에도 차이잉원이 다시한번 쑹추위를 특사로 파견하였다. 2016년과 달리 2017년에는 쑹추위도 시진핑과 대화 시간도 많이 가졌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한테는 차이잉원의 친서를 전달하는 등 외교적 활동의 반경이 넓어졌다. [[2019년]]에 쑹추위는 이미 초고령이라, [[2018년]] [[12월]] [[커원저]]를 [[친민당]]에 영입하거나 커원저가 대선 출마할 경우 지지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반면 [[민국당]]의 [[쉬신잉]]은 이런 쑹추위의 언급에 반발했다. 민국당도 커원저를 지지할 의사는 있지만 민국당한테 사전에 언질을 주지 않았다는게 그 이유. 결국 선거를 불과 2개월 앞둔 2019년 11월 중순, 총통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10% 이상을 득표했던 4년 전과는 달리, 한자리수 득표율에 머물렀다. 이번에야말로 마지막 출마가 될 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