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쑨뎬잉 (문단 편집) === 어린 도박사 === 1889년 1월 13일, 하남성 영성현 서양루촌에서 빈농 손옥림과 부인 소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손옥림은 처가인 소씨 가문의 땅 2무를 빌려서 겨우겨우 먹고 사는 가난한 농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쑨뎬잉이 태어나던 날, 점쟁이 한 사람이 쑨뎬잉의 외할머니 집을 찾아가 이 집안에서 흑룡이 강림하여 태어났다고 아부하면서 밥을 얻어먹었다. 밥을 얻어먹은 점쟁이는 쑨뎬잉을 보더니 문관이 되면 독무에 이를 것이고 군인이 되면 상장군에 이를 것이며 상인이 되면 큰 재산을 모을 것이라는 점괘를 내렸다. 그리고 쑨뎬잉의 원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존귀한 인물이라는 괴이쩍인 말을 남긴 후 쑨뎬잉의 이름을 전영, 아호를 금귀, 자를 괴원으로 지어주고 떠났다. 당연하지만 전제군주국인 청나라에서 황제의 원수가 태어났다는 말은 삼족이 몰살당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소리였으므로 소씨 집안은 점쟁이의 말이 절대 새어나가지 않게 함구하였다. 한편 쑨뎬잉의 아버지 손옥림은 처가에서 땅을 빌려주었음에도 이를 부치지 않고 빈둥거리다가 급전이 필요하면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쳐서 돈을 떼먹고 훈계하는 처가 식구들을 구타하곤 했는데 결국 홧병에 걸린 쑨뎬잉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떴다. 분노한 소씨 집안 사람들은 손옥림을 흠씬 두들겨 팼는데 손옥림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칼을 구해서 소씨 집안 젊은이를 찔러 죽여버렸고 그 죄로 관아에 잡혀가 참수당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이 풍비박산난 상태였지만 쑨뎬잉의 어머니 소씨는 점쟁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가난한 살림에도 쑨뎬잉이 7살이 되자 사숙에 보내 공부를 하게 했다. 하지만 천방지축으로 말을 듣지 않던 쑨뎬잉은 사숙에서 공부는 안하고 싸움질만 해댔고 훈장이 자신을 꾸짖자 앙심을 품고 사숙에 불을 질러버렸다.(...) 결국 쑨뎬잉은 사숙에서 완전히 쫓겨났고 설상가상으로 천연두에 걸려 죽다 살아나게 됐는데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얼굴에 곰보자국이 남아 훗날 손대마자, 마가 등의 별명을 얻게 된다. 결국 쑨뎬잉 모자는 서양루촌 주민들의 멸시를 받다가 손옥림의 고향인 손가장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주변의 멸시에 상처를 받은 쑨뎬잉은 더욱 막나가게 되었고 13살 즈음에 아예 손가장의 건달 우두머리가 되었다. 건달 패거리 중에는 집안이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쑨뎬잉은 이들과 노름을 하여 적당한 돈을 잃어주면서 사람을 꾄 다음에 어느 틈에 더 많은 돈을 따면서 노름으로 생계를 이어나갔고 그것으로 어머니를 봉양했다. 16세에 이르러 쑨뎬잉은 아예 유명한 도박사인 숭현사람 조낙천의 제자가 되어 하남성 일대를 떠돌아다니면서 도박을 하여 먹고사는 [[타짜]] 인생을 살게 되었는데 20세 즈음에는 도박으로 많은 돈을 모아 지역의 고관과 명사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푸는 등 지역유지의 수준에 이르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