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쌍십협정 (문단 편집) == 결과 == 회담 다음날인 10월 11일, 마오쩌둥과 장제스는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마오쩌둥은 정치협상회의를 연기할 것을 요구했고 장제스는 해방구 취소를 요구했다. 마오쩌둥은 떠나기 전에 정치협상회의 소집, 공민 자유 보장, 모든 정당의 합법성 승인과 정치범 석방에 대한 협의를 공개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통일된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지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다. 또한 쌍십협정이 벌어지고 있던 시기에도 산시성 상당지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허베이, 만주 일대에서 국민혁명군과 공산군 간의 영역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결국 쌍십 협정은 모두에게 이로운 민주적 정부를 수립하고 평화 협상을 이어가자는 '원칙적 합의'만 해냈을 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후 장제스는 1946년 7월 공산당 토벌을 위한 총동원령을 발표하면서[* 이는 공산당과의 문제가 합의로 이루어지는 정치 문제가 아니라 국민당에 강제복속시킨다는 군사문제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쌍십협정은 그 효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