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싱어송라이터 (문단 편집) === 노래하는 작곡가 === 첫 번째는 작곡가로 출발해서 가수를 겸하게 된 경우. [[유영석]], [[유영진(작곡가)|유영진]], [[유재하]], [[유희열]], [[윤상(가수)|윤상]], [[GRAY|이성화]], [[정재일]], [[정재형]], [[주영훈]], [[DEAN(가수)|DEAN]], [[Sia]] 등이 이 경우다. 이 경우 보컬 능력이 비교적 평이한 경우가 많다. 즉 살짝 부족한 보컬로서의 가창력을 뛰어난 음악적 센스로 커버하는 경우. 윤상의 경우 고음이 안 올라가져서, 녹음 도중에 곡을 고치는 해프닝도 있었다. 자신의 정확한 음역대를 몰랐다고. 특히 유희열은 자유로 가요제에서 환관 창법에 너덜너덜한 가창력을 보여 멤버들과 파트너 재석에게 맹렬히 디스당했다. 좋은 예시로 영국의 작곡가인 [[노엘 갤러거]]가 있다. 노엘 갤러거가 있던 오아시스에는 이미 [[리암 갤러거]]라는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있었지만, 리암은 오아시스 초창기만 하더라도 공연 펑크가 잦았다. 이때 메인 보컬의 공석을 작곡가이기도 하고, 그 때문에 오아시스의 모든 곡을 부를 수 있었던 노엘이 대신 맡았다. 또한 리암은 곡을 가려서 불렀다. 어쿠스틱 곡들은 자신의 보컬을 따라올 수 없는 나약한 곡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인데, 곡을 썩혀놓을 수도 없었던 노엘은 B사이드에 자신의 어쿠스틱 셋을 넣기도 하였는데, 보컬인 리암의 이러한 특징들로 말미암아 본디 프론트맨이 아니었던 노엘이 자연스럽게 보컬로서 공식적인 무대들을 접하게 된다. 이후 노엘이 보컬을 맡은 2집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사람들은 노엘을 자연스럽게 리암과 더불어 또 하나의 프론트맨으로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후 90년대를 지나 오아시스 후기가 될 수록 리암의 독특한 창법으로 목소리가 점점 맛이 가기 시작하자, 앨범이나 라이브에서 노엘이 보컬을 맡는 비중이 점점 늘어가면서 비중이 리암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하고, 이후 밴드가 공중분해된 이후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자신만의 솔로 밴드]]를 만들어서 작곡과 보컬을 둘 다 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같은 밴드에 있던 친동생인 [[리암 갤러거]]는 작곡하는 가수 케이스이다. 리암도 4집에서 Little James에 곡을 넣는 것을 시작으로, 작곡 비중을 늘려가고, [[비디 아이]]를 거쳐 솔로 시절에 와선 당당히 한 명의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