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혜진 (문단 편집) == 영화배우 심혜진 == 한창 CF모델로 활동하던 중 영화사 '지미필름'을 설립한 영화배우 [[김지미]]의 제안으로 '지미필름'과 전속 계약을 맺고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1989년 [[김지미]], [[이덕화]]와 함께 주연을 맡은 <추억의 이름으로>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하였고 같은 해 지미필름의 영화 <물의 나라>[* [[박범신]] 소설 원작]에도 출연하였다.[* 이미 스타였던 심혜진은 데뷔작을 포함해 단 한번의 오디션도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촬영장에서 노출신 강요 등[* 물의 나라 영화를 보면 스트립쇼, 베드신 등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 여배우에게 감당하기 힘든 장면이 꽤 나온다.] 체계적이지 못한 영화 제작 시스템과 아무런 준비 없이 소속 영화사에 의해 촬영장에 투입된 심혜진은 영화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고, 스스로 연기력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다시는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심혜진을 찾아가 설득하며 찍은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이 1990년 개봉하였다.[* 당시 심혜진을 찾아간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은 후에 그대안의 블루, [[시월애]], 푸른소금을 연출한 [[이현승]] 감독이다. 심혜진은 이현승 감독과의 인연으로 '그대안의 블루'에 출연할 뻔 하였으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출연하지 못하였다.] 심혜진은 <[[그들도 우리처럼]]>을 통해 영화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문성근]], [[박중훈]] 두 배우사이에서 ‘그들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완전히 악에 바쳐서 촬영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인 심혜진은 영화배우 데뷔 1년만에 국제 영화제인 '''낭트 영화제'''와 [[춘사영화제|춘사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는다. 1992년 영화배우 심혜진, 한국영화사,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작품인 <[[결혼 이야기(1992)|결혼 이야기]]>가 개봉하였다. 최민수와 함께 주연을 맡았으며 서울 관객만 53만명을 동원하며 그 해 압도적인 관객수로 1위를 기록한 대흥행작이다.[* 2위는 서울 관객 23만을 동원한 최민수의 <미스터 맘마>, 3위는 서울 관객 17만을 동원한 심혜진의 <하얀 전쟁>] <[[결혼 이야기(1992)|결혼 이야기]]>로 대종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충무로 심혜진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심혜진은 당시 여성들의 워너비로 등극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배우는 절대로 시나리오나 짜인 콘티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어떤 공식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니까 작가나 감독이 만들어 놓은 박스 안에서 그걸 최대한 팽창시켜 주기만을 원한 거다. 그 이상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 그 박스 바깥으로 나가면 다 편집 되어서 잘려나갔다. 난 그런 게 납득이 안됐다. 다행히 힘들었지만 김의석 감독과는 그런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면서 찍어나갈 수 있었다. 그게 <[[결혼 이야기(1992)|결혼 이야기]]>다.''' > >''' <[[결혼 이야기(1992)|결혼 이야기]]>는 여성을 수동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남성과 대화하고 상의 할 만한 수준의 동등한 ‘주류세력’으로 키워준 거다. 그게 90년대의 한국사회의 트렌드가 되었던 거지. 그러다가 2000년대에 <엽기적인 그녀>가 나오면서 ‘여성상위’의 시대로 역전이 된 거고.''' [[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685|심혜진, 여성의 온도를 쿨하게 바꾼 배우]] >코카콜라 광고를 통해 스타가 된 심혜진은 당찬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로 관객에게 어필했다. 이전의 여성 연기가 남성에 대한 순종, 복종, 희생적이거나 섹슈얼 무드로 일관했다면 심혜진은 남성 우월주의자인 최민수에게 당당히 맞서 자기 주장을 펴고 과감하게 애정표현을 할 줄 아는 현대적인 캐릭터를 살려냈다. 이는 당시 부상하고 있던 신세대론과 여성 권리 신장론을 관객의 기대치에 맞게 계산된 것으로 1990년대 한국 대중영화의 지형도를 바꾼 계기가 된 작품이 됐다. >---- >이효인 『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 문화사』 심혜진의 '''영화배우 인생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96년 심혜진'''은 '''대한민국 영화계 3대 메이저 시상식인 대종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은행나무 침대>로 중복 노미네이트 ],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에서 각각 다른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며 '''당시 영화계에서 심혜진이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수있다. <[[은행나무 침대]]>와 <[[박봉곤 가출사건]]> 두 편 모두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청룡영화상에서는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다.[* [[은행나무 침대]]는 강제규 감독이 그녀의 집앞에서 진을 치면서까지 캐스팅 하려고 애를 썼었다 한다.] 1997년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에 문성근, 한석규와 함께 출연 하였다. 이 작품으로 심혜진은 대종상[* <초록물고기>, <마리아와 여인숙>으로 중복 노미네이트],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1993년, 1996년, 1997년 이렇게 3회에 걸쳐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영광은 단순히 여배우의 기근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영화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탈바꿈하는 심혜진의 연기력과 배우정신에 기인한다. 연기력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대표적인 영화배우였다. 1999년 심혜진은 TV 드라마로 활동영역을 넓혀 MBC 미니시리즈 <마지막 전쟁>에 출연하였다.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1999년 말 심혜진은 [[아비정전]], [[중경삼림]] 등으로 한국 영화계에도 큰 영향을 줬던 홍콩 [[왕가위]] 감독의 영화 <2046>에 캐스팅되었다. 한국[* 한국에서는 LG전자가 투자에 참여하였다.], 홍콩, 일본 합작 영화로 각국의 톱스타들이 캐스팅 된 대형프로젝트였다.[* 심혜진, [[양조위]], [[장만옥]], [[기무라 타쿠야]], 후에 [[장쯔이]] 캐스팅] 왕가위 감독이 대표인 매니지먼트사 하우스원(HOUSE1)과 10년의 계약을 맺으며 아시아를 넘어 국제스타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왕가위 감독은 <2046> 캐스팅 후 심혜진에게 영어공부와 피부관리를 요구하였고, 심혜진은 1998년을 마지막으로 [[한국 영화]] 출연을 중단하고 <2046> 준비에 매진하였으며, 왕가위 감독은 심혜진이 모델로 발탁된 화장품 SK-2 광고를 홍콩에서 직접 촬영하는 애정을 보였다. 1995년 12월에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중경삼림]], [[타락천사]]가 한국에서 개봉해 흥행성공을 거두어 큰 인기를 끌어 내한했었는데, 그 기간동안 그녀가 출연한 [[은행나무 침대]] 촬영장을 방문하면서 그녀와 만남이 성사되어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가위 감독 특유의 비정상적으로 느린 영화 제작 속도 때문에, 2003년 심혜진은 왕가위의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정리하며 <2046>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심혜진, 양조위, 장만옥 당시 캐스팅 된 배우들은 처음에 시놉시스만 받고 시나리오는 받지 못했다고 한다. ~~즉흥적인 제작스타일이 한국의 [[홍상수]] 감독과 비슷하나, 홍상수는 저예산으로 단기간에 제작을 끝내는 감독~~ 계속되는 촬영 중단으로 제일 먼저 촬영에 들어간 일본 배우 [[기무라 타쿠야]]는 '이 영화 2046년에나 개봉하는거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2004년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뒤 재편집을 거쳐 개봉되었다. 이후 작품에서도 왕가위 감독의 느린 제작속도는 여전하다.] 영화가 예정대로 제작되고 개봉 되었으면 국제적인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결과적으로 심혜진에게 국내 영화계 공백기를 가져다주었고 심혜진의 빈자리는 90년대 말 충무로에 등장한 여배우들이 채워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당시 TV에서 인기를 얻은 [[심은하]]가 떠오르고 있었다.] 2003년 심혜진은 19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이후 5년만에 <아카시아>로 충무로에 컴백하였다. 2005년 10대와 20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심혜진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게된 작품,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출연한다.[* 심혜진의 전성기에 태어난 90년대생들은 심혜진을 프란체스카로 인식한다.] 주인공 프란체스카~~깜장드레스~~를 연기하였으며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시즌3까지 제작되었다. 그러나 90년대 함께 활동했던 66년생 동갑내기 [[강수연]]처럼 그녀도 이후 영화 출연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활동이 거의 없어진 강수연과는 달리 드라마쪽에서라도 꾸준히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최진실]]이 안타깝게 자살로 세상을 떠나고 , 2022년에는 [[강수연]]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면서 1990년대 초중반 트로이카 중 유일하게 혼자 남게 되었다. >심혜진이 <[[안녕, 프란체스카]]>를 택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인의 등용문’으로만 인식됐던 시트콤에 당대의 여배우가 출연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심혜진은 그 시기를 자신이 성(城) 문을 열고 나선 때로 규정했다. > >'''“자기만의 성에 갇혀 있을 때, 그게 힘들다고 느끼지면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 같아요. 물론 그 변신이 쉬운 일은 아니죠. 성 안에만 살아온 [[공주]]는 성 밖을 부러워하면서 갇혀 있죠. 어느 순간에 바깥으로 나갈까 고민하죠. 그런 시기가 올 때 자연스럽게 자기를 던질 수 있어야 돼요. 던질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은, 사실 너무 힘들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